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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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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토론을 하면서 서로 제 주장만 하면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을 두고 나오는 평가가 그런 모습이다. 한쪽은 미국시장이 우리 앞에 훤히 펼쳐질 것처럼 기대를 부풀린다. 다른 한쪽은 별반 얻은 것 없이 퍼주었다고 한다. 협정 내용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터여서 두 쪽 주장 모두 다분히 주관적이다. 정부가 협정문안을 될수록 빨리 공개하겠다니, 그때 전문가들이 분석에 나서면 논란의 양상과 평가도 달라질 게다.냉정한 득실 평가에 앞서 과정부터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참 이상한 협상이었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말도 하지만, 과정이 엉망인데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권국 사이의 협상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불균형 협상이었다. 축구 경기를 하는데, 한 팀은 자기 진영 벌칙구역 안에 상대팀 선수가 들어올 수 없게 하면서, 자기 팀 선수는 상대 진영 벌칙 구역 안에서도 얼마든지 슛을 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 놓았다고 하자. 선수 기량에 현격한 차이 있다면 모를까, 결과는 뻔하다. 한-미 협상이 그랬다. 미국 규칙이 협상을 지배했다. 미국이 정한 협상 시한에 쫓기다 보니 우리의 수용 능력부터 면밀히 따지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은 자국 국내법을 고쳐야 할 내용은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고 나왔다. 반면에 우리에겐 국내법이 아무런 변수가 아니었다. 법은 국가 틀과 정책을 구현하는 규범이다. 그래서 법 하나 고치는데도 무수한 논란이 벌어지는데, 협상 하나로 무려 백여가지 법률을 고쳐야 할 판이란다. 헌법까지 손대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역점을 뒀던 무역구제 분야 요구안이 처음부터 벽에 부닥치고, 정책주권을 흔들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수용한 건 이런 근본적 불균형 때문이었다.
협상의 초점도 판이했다. 미국은 얼마나 더 얻어내고, 미국 기준을 얼마만큼 한국에 더 이식해 미국 자본이 ’놀기 좋게’ 할지에 역점을 두고 공세를 편 반면, 우리는 얼마나 덜 피해를 볼지 지키는 데 거의 모든 힘을 쏟았다. 또한 미국이 얻은 건 곧바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과실이 나올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쇠고기 수입 재개 약속과 상당수 민감 농산물 관세 철폐, 지적재산권과 의약품 등의 특허권 연장, 방송시장을 비롯한 서비스시장 개방 확대 등이 그런 사례다. 자유무역협정을 다루는 미국의 자세는 “경쟁적 자유화 전략이란 미국이 자신의 선택옵션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로버트 죌릭 전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의 말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된 전략틀 속에서 기획되고 집행되어 왔다는 것이다.(이해영, <낯선 식민지 한미 FTA>)
그와 달리 우리가 얻었다는 건 효과가 얼마일지 장담하기 어렵다. 자동차나 섬유 분야가 대표적으로 협상을 잘한 사례로 꼽히나, 그 효과를 두고도 논란이 분분하다. 나머지는 미국시장에 좀더 낮은 관세나 관세 없이 접근할 기회가 커졌다는 것인데, 그래봐야 지난 한해의 원-달러 환율 하락세를 상쇄할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 정도 가격효과로 미국시장 점유율이 쑥쑥 오를 것이라고 하는 건 순진하거나 기만하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우리가 잘하면’이라는 근본적 전제로 다시 돌아간다. 노무현 대통령이 담화에서 ‘도전’을 유독 강조한 것에서도 이런 한계가 읽힌다.
협상 과정과 자세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데도 정부 말처럼 우리가 판정승한 결과가 나왔을까? 행여 맨손으로 범에게 달려들고, 걸어서 황하를 건너려는 무모한 용기는 아닐는지. 협상 내용이 모두 공개된 뒤 벌어질 백화제방을 기대한다.
김병수/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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