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12 21:52
수정 : 2007.04.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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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장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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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동결자금 문제의 해결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핵 2·13 합의의 본격적 이행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분과별 후속 협상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비디에이 북한자금 문제에서 보듯이 후속 협상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초미의 관심사인 북한 핵의 전면적인 폐기와 북-미 수교 문제도 매우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핵 폐기와 북-미 수교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물려 있지만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북한과 미국이 상이한 전략적 목표를 갖고 이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의 군사적 선제공격 가능성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이를 무기로 대미 수교를 실현한다는 전략으로 임해왔다. 반면에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북한 핵의 폐기 또는 동결에 있다. 미국에게 북핵 폐기와 대북 수교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관계는 개선하되 국교관계의 수립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속내인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의 전면적인 폐기를 이행하더라도 미국이 곧바로 북한과 수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워싱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서 수교 때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의회가 북핵 합의 내용을 정치쟁점화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인권 상황이 현저히 개선되지 않는 한 의회의 비준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부시 행정부는 중국 및 리비아와 국교 정상화에 앞서 설치했던 연락사무소를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선호하고 있다. 연락사무소를 개설해 운영하더라도 사실상 외교관계 수립이나 다름없는 관계 증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공식으로 수교한 것은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이 1972년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고 7년이 지난 79년 카터 대통령 때였다. 미국과 리비아 간 국교관계 복원도 리비아가 2004년 핵개발 계획 포기와 함께 핵 부품과 관련문서를 미국에 넘겨주고 2년이 지난 뒤인 2006년에야 이뤄졌다. 수교 전 단계로서 미국은 두 나라에 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한 바 있다.
수교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인적 교류 확대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인식도 북-미 수교의 큰 걸림돌이다. 북한 수뇌부가 미국과의 인적 교류 확대를 체제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베이징 6자 회담 때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6자 회담 대표가 2·13 합의 초안 작성 과정에서 북-미 수교 관련 조항에 인적 교류 문구를 넣으려 했으나 북한의 김계관 수석대표가 반대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인적 교류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의 입장은 연락사무소는 곤란하고 정식 수교로 직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미가 본격적인 수교 협상에 들어가면 양쪽의 견해차는 서서히 표면화할 가능성이 있다. 잠재적 갈등이 표출될 경우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현재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2·13 합의가 6자 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을 통한 합의라는 안전장치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앞으로 6자 회담과는 별도의 채널에서 논의하게 될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도 또하나의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워싱턴 장정수 논설위원
jsjang05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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