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3 18:25
수정 : 2007.04.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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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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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임기를 꼭 열 달 남겨둔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준비는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는 것 같다. 지난 1월엔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퇴임 후 살 집 착공식이 열렸고, 지난주에는 김해에 본교를 둔 인제대에 ‘노무현 기념관’을 건립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애초 구입하려다 못한 생가터도 아는 사람을 통해 사들였다고 하니, 복원 작업도 곧 시작될 게다. 이달 말께는 측근의 전직 비서진을 중심으로 ‘참여정부 평가포럼’이 발족한다고 한다. 아마 노 대통령의 업적을 홍보하고 방어하는 근위 모임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퇴임 준비는 전임자들에 견줘 이른 편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을 1년2개월여 앞둔 2001년 말에 동교동 사저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보다 한 달 정도 이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보다 또 두어 달 앞선 96년 9월에 상도동 옛집을 허물고 개축 공사를 시작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퇴임 준비는 집보다는 돈 만들기였던 것 같다. 퇴임 직전인 93년 2월 어느날 하룻동안에만 1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의 수표 수십장이 은행계좌에 입금됐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상왕’ 노릇을 꿈꾸며 만들었던 일해재단은 퇴임 한참 전인 83년 12월에 설립됐다.
우리네의 퇴직 준비는 어떤가? 40대 후반에서 50대까지의 10여년은 인생의 절정기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제2의 인생’을 강요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새로 직업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은퇴해야 한다.
그럴 경우 보호막이 마땅치 않다. 국민연금이 그런 구실을 해 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구멍이 너무 커졌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최근 타협한 대로 국민연금 급여율을 40%로 낮추면, 상당수 연금 수령자가 1인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돈을 받게 된다. 월급 만으로 생활해 온 가장이라면, 퇴직 후 연금이 과거 수입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노후생활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자식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한국 경제가 더욱 전면적으로 개방된다는 뜻이다. 개방의 회오리가 ‘괜찮은 일자리’의 축소로 이어져 온 게 지난 십수년 우리의 경험이다. 한국 경제가 이미 ‘고용 없는 성장’ 체제로 굳어졌다는 인식도 일반적이다. 그 직접적 피해는 청년들이 본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20대 취업자 수는 21년 만에 최저치다. 3월에도 20·30대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때에 견줘 오히려 줄었다. 에프티에이 효과가 본격화하는 몇 해 뒤에는 자식들이 백수나 비정규직이 될 위험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은퇴를 앞둔 가장들에겐 이것저것 다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각자 알아서 노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4억원 이상을 들여 고친 상도동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 쓸쓸했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손가락질 때문이다. 악착같이 긁어모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꿈꿨던 상왕 체제도 퇴임 뒤엔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노 대통령 재임 동안 살기가 더 팍팍해졌다는 아우성은 이제 아래위와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국민연금 개편은 그의 임기중 이뤄진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다. 퇴임 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임 때 연봉(2007년 2억354만2천원)의 95%를 연금으로 받게 될 노무현 대통령은 절벽 위에 선 동시대인들을 위해 어떤 퇴임준비를 하고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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