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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26 19:01 수정 : 2007.04.26 19:01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부엌에서 음식을 통해 확산되는 병원균이 실제로는 광우병보다 건강을 더 위협하는 요인일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광우병을 더 두려워한다. 2004년 미국에서는 단 한 건의 광우병 발병으로 전역에서 쇠고기 기피증이 일어났다. 피터 샌드먼은 이 까닭을 ‘통제 원리’로 풀이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은 통제 가능한 위험보다 훨씬 큰 두려움을 일으킨다고 했다. 내가 먹는 고기에 광우병을 일으킬 ‘프리온’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는 반면, 집 부엌 음식물은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차이가, 두려움에선 현격한 차이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젠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다음달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언제 어디서 우리 몸에 들어올지 모른다. 광우병 감염 위험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먹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쇠고기를 끊겠다면 모를까, 그런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큰 유통점에서 사 먹으면 그나마 낫지만(그렇다고 미국산 쇠고기인지 여부를 100퍼센트 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식점에서 쇠고기를 먹겠다면 선택권을 포기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할게다.

소비자한테는 돈 내고 사 먹는 고기가 한우인지 미국산인지,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산인지 알권리가 있다. 당연한 상식이어야 하나 현실에선 상식이 아니다. 요식업체의 반발과 국회의 눈치보기 탓에 이 당연한 권리를 ‘손톱’만큼 인정하는 데도 몇 해가 걸렸다. 5년여에 걸친 소비자 단체의 노력으로 음식점의 고기류 원산지 표시제를 담은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2005년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행된 이 법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구이용 고기에만 적용되는데다, 적용 대상 음식점도 90평 이상 대형 음식점으로 한정돼 있다. 전체 일반 음식점 수의 1%도 되지 않는다. 수육이나 설렁탕 등에 들어가는 쇠고기는 완전 사각지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점검했더니, 대형 음식점도 열에 한 곳 이상은 원산지 표시제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은 사람도 알게 모르게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음식점 메뉴에 한우는 한우, 미국산 쇠고기는 미국산이라고 모두 표시하게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지 국민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정부는 전면 시행하면 파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걱정되는 파장이 뭐겠는가. 한우인 것처럼 팔아 이익을 더 남길 수 있는 여지를 빼앗으면 음식점들이 반발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쯤 될 게다. 미국 눈치 보는 탓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침묵하는 소비자의 선택권은 뒷전에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수입 쇠고기를 한우인 줄 잘못 알고 먹어도 ‘바가지’ 한번 썼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광우병 감염 위험이 있는 쇠고기조차 모르고 먹을 수 있게 됐다. 좀 예민한 사람이라면 비싼 값에 쇠고기를 사 먹고 마음 한쪽이 찜찜해 소화도 제대로 안 되게 생겼다. 정부는 현행 원산지 표시제를 일년 정도 시행해 보고 적용 대상을 확대해 나가겠다는데, 그 때까진 국민들이 속건 말건, 먹기 싫은 걸 먹건 말건 알 바 없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음식점 하는 분들도 원산지 표시제의 득실을 다시한번 곱씹어 따져 보시라.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한번 확산되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서 대형 음식점만 찾는다든가, 음식점에선 아예 쇠고기를 먹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음식점들이 먼저 나서서 정부한테 원산지 표시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라고 촉구하는 게 소탐대실을 피하는 길일 수 있다.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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