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10 18:03
수정 : 2007.06.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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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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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지난 토요일 오전 어쩌다가 서울 도심 한복판을 여유롭게 걷게 됐다. 계절을 착각하게 만들 만큼 새파란 하늘 아래 놓인 거리는 평소 서울과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과 차의 숨가쁜 물결이 잠시 물러난 자리에 산뜻하고 깔끔한 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층 건물들도 언제 그렇게 단장했는지 하나같이 화려했다. 주눅이 들 지경이다. 이 화려함을 완성하는 장치가 시청앞 잔디밭과 청계천이다. 번지르르한 거리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이질적이되 보완적인 요소다.
이 도심 한복판에서 20년 전 오늘의 암울함, 그리고 민중의 분노와 열기를 상상해 내기는 어렵다. 밝고 깔끔한 시청앞 광장에 투박하고 거친 투쟁 구호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우중충한 거리를 거칠게 가로막고 나설 때나 어울리던 것이다. 수문장 교대식이 벌어지는 남대문과 도로점거 시위가 어울리지 않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에게 돌아온’ 이 공간이 정말 자유롭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청계천은 ‘별다방표’, ‘콩다방표’ 커피를 들고 여유를 부리기엔 딱 좋은 공간일지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다. 시청앞 잔디밭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행사는, 지난 4월 투명한 유리벽 속에서 벌어졌던 ‘서울세계여자스쿼시대회’였다. 한밤중 밝은 조명을 받으며 벌어진 이 경기는 이국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공간이 만드는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하는데, 서울 도심은 그저 세련되게 초연한 척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자유로운 듯하지만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이것이 서울 도심에 가득하다. 설계자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사회 변화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서울 도심의 분위기는 시대 상황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민주화 투쟁 20년의 변화를 논하는 말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실감하는 변화는 ‘금기에 도전하는 자유로움’이 20년 만에 ‘자유로움 밑에 도사린 금기의 압박’으로 뒤바뀐 것이다. 금기를 설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아무래도 돈이다. 돈이 최고고, 돈이 설정한 기준 앞에서는 어떤 가치도 무너진다. ‘경제를 살린 뒤에 분배니, 정의니 떠들라’는 호통 앞에 자신있게 맞설 사람은 없다. 물론 여기서 ‘경제’는 ‘돈벌이’를 고상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돈이 곧 경제’라는 천박함이 시대정신이다.
돈이 마침내 모든 가치를 정복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그래서 지금의 한계와 문제는 ‘87년 체제’라기보다는 ‘97년 체제’의 결과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 ‘97년 체제’는 이땅의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돈이 진짜 무서운 줄, 그 전엔 정말 몰랐다. 이 공포감이 만든 상처는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감춰져 있다. 드러내는 것조차 두렵다. 동물들이 상처를 숨기고 아프지 않은 척하듯,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외환위기 극복’을 되뇌이며 감추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이렇게 상처를 숨기고 10년 동안 돈, 돈을 외쳤지만 나아진 건 별로 없다. 재벌이 아무리 세계로 뻗어나가고 외화가 넘쳐나도, 양극화는 날로 심해진다. ‘97년 체제’의 부산물인 비정규직의 일상화도 사회의 상처를 점점 깊게 만든다. 사실 이 변화는 ‘양극화’보다는 ‘빈곤화’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사람인들 온전할 리 없다. 아니 진짜 바뀐 건 다름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문제를 풀려면 사람이 다시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상처를 드러내야 한다. 이젠 정말 ‘돈 중심의 체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느냐’고 물어야 한다. 다만 이 질문은 사회적, 집단적 질문일 때만 의미가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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