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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1 18:06 수정 : 2007.06.11 18:06

여현호/논설위원

아침햇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어느 집단이든 모두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범여권과 진보진영도 이제 그런 문제 하나에 정면으로 맞부닥칠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인 노무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물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때는 물론, 내년 2월 퇴임 뒤에도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정치적 발언을 계속하리라는 것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그는 참여정부를 향한 공격에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재임 중에도 대통령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데, 퇴임 후라고 해서 삼가고 자제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는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이다.

말만으로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정치인은 말길과 함께 발길을 봐야 한다. 그의 측근들이 만든 참여정부 평가포럼은 이미 하나의 정치세력이다. 노 대통령 자신은 최근 한 달 사이 광주와 전주에서 각각 1박하며 여러 행사에 참석하는 등 대국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꿈을 지닌 현역 정치인의 ‘호남표 공략’ 같다고 해도 크게 어색하진 않다.

사실, ‘퇴임을 앞둔 대통령’ 노무현은 전임자들과 다르다. 그는 거리낄 게 많지 않다. 장담할 수야 없겠지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개인 비리로 감옥에 가야 할 것 같지는 않다. 외환위기로 할말이 없게 된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다르다. 그는 온갖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고 자랑한다. 그를 대변하는 이는 찾기 힘들어졌지만,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은 남아있다. 퇴임 때 이미 여든을 바라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그는 이제 막 환갑을 넘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보다 다섯 살 어리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는 거의 동년배다. 뒷전으로 물러앉기에는 너무 젊다.

무엇보다 그는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불끈 하는 성질도 살아있고, 고집도 여전하다. 이쪽 저쪽의 온갖 비판과 험구에 시달리면서 더욱 외곬으로 빠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모두 나쁘다고 여기는, 또다른 의미의 ‘바보 노무현’이 됐다고 흉보는 이들도 있다. 어떻든,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가려는 길을 갈 것이다. 또, 필요하다면 어떤 선택이든 할 것이다. 그에겐 내년 4월 총선 출마나, 5년 뒤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서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런 ‘정치인 노무현’이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선 과정이든 그 이후든, 누군가가 자신을 밟고 가려 한다면 그는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더 많은 열매를 위해 땅에 떨어져 썩는 ‘한 알의 밀알’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그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려운 문제다. 그는 수십년 개혁세력의 적자(嫡子)를 자임하려는 것 같다. 이른바 수구세력은 물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옛 동지들에게도 시퍼런 말의 칼날을 들이댄다. 지금 같은 범여권의 지리멸렬이 계속되면, 강하게 결집한 소수로도 충분히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범여권이나 진보진영이 그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너무 인기가 없다. 개혁세력 안에서도 그의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은 냉소와 비판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소수’에 그쳐서는 승리하기가 어렵다. 이 상태로는 범여권이 다음 5년이나, 10년을 기약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를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이유다.

지금 많은 이들이 ‘정치인 노무현’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의 기세에, 어떻게 대응할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는 아니다. 어느 쪽으로든 답을 찾아야 한다.


여현호/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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