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1 17:24
수정 : 2007.06.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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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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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 공신은 행정수도와 국토 균형개발 공약이었다. 그러나 임기를 8개월여 남겨놓은 지금 공약의 실체는 모호하기만 하다. 행정수도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이후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대폭 축소됐다. 국가 균형발전의 핵심인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진짜 걱정되는 것은 몇 해 뒤다. 정부 기능이 얼마나 행정중심도시로 옮겨갈지, 공공기관들의 혁신도시 이전이 제대로 이뤄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잘못하면 대지만 조성해 놓고 황량한 벌판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대권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최근 대북정책과 관련해 ‘비핵개방 3000’을 들고나왔다.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현재의 1천달러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3천달러까지 끌어올리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 구상의 중심에 나들섬이 있다. 북한에 인접한 한강 하류의 퇴적지를 개발해 한반도의 맨해튼, 동북아의 허브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우리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력, 서해안이란 입지를 고려하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자본과 기술면에서도 나들섬을 개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운하와 나들섬 공약은 왠지 모르게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한반도 지형을 변화시키며 이로 말미암아 많은 돈이 풀리고 지역 개발을 원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 호응하리라는 점, 그리고 동북아 허브를 지향한다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 전 시장이 한발 더 나아갔다는 점이다.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마치 국내 경제운용 계획을 짜는 것처럼.
3천달러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대대적인 개혁과 개방도 이뤄져야 한다. 그뿐 아니다. 10년 동안 매년 12% 안팎의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한다. 최근 과열 논란을 빚고 있는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10% 안팎이니 공약을 실현하려면 내년부터 당장 막대한 투자자금을 쏟아부어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치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6자 회담의 합의가 무리 없이 이행된다 해도 북한 핵 폐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릴 것으로 본다. 이 전 시장은 물론 핵을 포기한 뒤가 아니라 핵 포기를 조건으로 지원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쪽이다. 하지만 그 시점이 언제부터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현대가 정부 지원을 받아 금강산을 개발하는 데만 거의 10년이 걸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초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북한 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기대하던 특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비핵개방’이란 전제조건을 가로막을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이 전 시장은 10년 뒤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경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했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물러선 바 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북한의 국민소득을 연도와 수치까지 제시해 달성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 오히려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는 최근 자신에 대한 검증 공세와 관련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아니면 말고’ 식 공약을 남발한다면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나라를 운영하는 일은 한판의 건설공사가 아니라는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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