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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8 18:19 수정 : 2007.07.08 18:19

김병수/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정치인들이 대체로 도덕적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게다. 정치인이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 저을 이가 많을 게다. 그래서일까. 중국의 사상가 리쯩우 같은 이는 얼굴이 두텁고 마음이 검어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나 중국 법가 사상을 대성한 한비의 생각도 맥락이 통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비도덕적인 게 아니라 무도덕, 다시 말해 도덕과는 무관하다고 했고, 한비는 나라는 도덕이 아니라 법(法)과 술(術)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대통령 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유력 대선주자들을 겨냥한 검증 바람이 일고 있다. 유권자에겐 후보자의 도덕성을 알아볼 좋은 기회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유력 정치인들한테 어느 정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어느 선까지 눈감아 줄까? 대권을 향해 순항하는 듯하던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거센 풍랑을 맞았다. 하루가 멀다고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전력과 의혹이 제기된다. 부동산 명의신탁 또는 투기 의혹은 단순한 음해로 보기엔 건수나 거래 과정의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다스와 금융 사기를 일으킨 비비케이(BBK)의 실제 주인이 이 후보라는 의혹도 그를 괴롭힌다.

그는 이미 몇차례 실정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다. 15대 총선에선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고, 증인을 국외로 도피시킨 적도 있다. 최근엔 적어도 다섯 차례는 위장전입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부동산 투기 목적이든 자녀 교육을 위해서든,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그래도 그는 국민 지지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그 밖의 의혹들이 사실인지 여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당사자들의 고소·고발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니 좀더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 후보를 둘러싼 의혹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한편에선 야릇한 흐름이 보인다. 설령 도덕성에 문제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해도 능력만 있다면 그 대선주자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얘기들이 의외로 많이 들려온다. 얼마 전 한 모임에 참석했던 지인은 그런 말에 동의하는 이들이 상당수여서 놀랐다고 했다. 필자도 비슷한 말을 드물지 않게 듣는다. 이 후보의 도덕성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서 나오는 얘기들인데, 딱히 그에게 국한된 시각만도 아닌 듯하다. 국가 지도자감의 도덕적 흠결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현상이 과거보다 심해진 게 맞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건 퇴행적 흐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폭행사건을 두고 ‘법을 어긴 건 잘못이지만 이해한다’거나, 심지어 ‘멋있는 아버지 아니냐’는 인식이 상류층이나 지식인층 사이에 적잖게 있었던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해 본다.

유비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유선에게 제갈량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밝힌 게 있다. “신이 죽는 날, 안으로는 남는 비단이 없고 바깥으로는 남는 재물이 없도록 해 폐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그의 말대로였다.(여명협의 <제갈량 평전>) 이런 도덕성이 없었다면 재능만으로 제갈량이 그만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대선을 앞둔 지금 국민들이 제갈량 만큼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정치인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 게다. 나라를 이끌 이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도덕정치를 펴란 뜻은 아니다. 도덕성이 훼손되어선 정책이 신뢰를 얻을 수 없고 부패 근절 등 투명성을 높이기도 어렵기 때문일 터이다. “국정수행 능력만 있다면 …”이란 말은 가정일 뿐, 도덕성과 동떨어져서는 발휘될 수 없는 능력이다.

김병수/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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