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2 19:13
수정 : 2007.07.1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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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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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말이 있다. 1순위가 군 복무기간 단축이다.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세금 깎아주겠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한나라당 경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당대표가 예상했던 대로 감세를 핵심 정책 공약으로 내걸고 나왔다. 노무현 정부 들어 조세 부담률이 이전보다 크게 높아진 상황이어서 어느 때보다 잘 먹혀들 수 있는 그럴듯한 공약이다. 때마침 각국에서 법인세 인하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과 독일이 올해 들어 법인세를 크게 낮췄고, 프랑스도 법인세를 5%포인트 가량 낮출 계획이다. 미국 역시 법인세 인하를 위한 원탁회의를 열기로 했다. 도미노처럼 인하 경쟁이 불붙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법인세율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25%지만 지방세를 포함하면 27.5%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35%와 30%지만 지방세를 포함하면 41%에 이른다. 독일은 40%였던 세율을 올 들어 30%로 낮췄다. 프랑스는 35%, 영국은 30% 수준이다. 우리보다 법인세가 낮은 곳은 싱가포르·홍콩·아일랜드 같은 몇몇에 불과하다. 성장을 도외시하고 분배를 위해 ‘세금폭탄’을 쏟아부었던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권이라면 서방 나라들은 ‘극좌’라고 할 만하다.
물론 법인세 징수액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1998년 10조7천억원에서 2006년 29조3천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 안팎까지 올라갔다. 재계는 이를 근거로 법인세 인하 목소리를 높이고, 한나라당 주자들은 감세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세금을 낮춰야 투자와 고용이 증대하고, 그렇게 성장을 해야 빈곤층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법인세율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였다. 28%였던 세율이 2001년 27%, 2005년 25%로 낮아졌다. 그런데도 법인세 징수액은 크게 늘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사업 실적이 좋아진데다 금리가 낮아지고 위험사업을 피하면서 순익이 늘고 있다. 세금 때문에 투자를 못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세금이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1억원까지 13%, 1억원 초과 25%의 두 단계로 돼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25% 세율을 20%로 낮추고 2억원 이하 세율도 10%로 낮추겠다는 안을 내놨다. 박근혜 후보 역시 1억원 이하 13%의 세율을 2억원 이하 10%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혜택이 국민에게 얼마나 돌아갈지는 의문이다. 과세표준 1억원 초과 기업은 전체의 15.6%에 불과하지만 납부세액은 전체 법인세액의 97.9%에 이른다.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혜택이 대부분 소수 대기업에 돌아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종업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의 고용 인력이 1천만명을 넘는다. 차라리 25% 누진과세의 기준을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올리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그러면 과표 1억~10억에 해당하는 기업의 세율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세율도 13%에서 10%로 낮추면 더 좋다. 2005년 기준으로 과표 10억원 이하 법인은 전체의 97.7%에 이르지만 납부 세금은 2조7천여억원으로 전체의 10.4%에 불과하다. 과표 기준을 올리면 32만여 기업이 혜택을 보면서도 세수감소는 1조5천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6조~12조원 감세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마달 이유가 없다.
세금을 낮춘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제대로 혜택이 돌아가야 고용도 늘고 소비도 증가한다. 몇몇 대기업만 키워서 나라경제를 살리겠다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기왕 감세 정책을 밀고나가려면 영세·중소 기업을 살리고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할 때다.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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