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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7 18:35 수정 : 2007.08.27 18:35

정남기/논설위원

아침햇발

19세기 중반 영국의 군사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전쟁 때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독일은 100만명, 러시아는 150만명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고작 10만명이었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영국군이 독일 해안에 상륙한다면 경찰을 동원해 체포하겠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력 때문이었다. 1850년 영국은 세계 철강의 70%, 면직물의 50%를 생산했다. 19세기 말에는 전세계 금융 거래의 90%가 파운드로 결제됐고, 바다를 오가는 상선의 절반이 영국 소유였다.

영국이 1870년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든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산업자본의 몰락이었다. 산업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자본이 국내 산업보다는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국외투자에 몰렸다. 막대한 자본과 파운드화의 위력으로 세계시장을 주무르니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와 혁신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반대로 대영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늘어갔다. 세금의 4분의 1이 제국 유지를 위한 방위비로 지출됐다. 경제통계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분석에 따르면 1870~1913년이 바로 영국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1차 물결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국 영국의 쇠퇴를 재촉했으며, 세계경제의 패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2차 물결도 미국의 산업 경쟁력의 약화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세계화의 2차 물결은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자본이 세계를 휩쓸고 있음에도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와 혁신은 부족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추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미국이 정작 주요 산업에 대해 보호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점도 이를 잘 말해준다. 오늘날 미국의 현실은 파운드화에 의존하다가 차츰 경쟁력을 상실해간 100년 전의 영국을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한 과도하게 비대한 미국 금융자본의 한 단면이다.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미국은 제2의 영국이 될 것인가? 또 중국은 제2의 미국이 될 수 있을까?

외환위기 이후 미국의 금융자본이 국내에 대거 들어오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미국이라고 세계화 과정에서 이득만 보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끝이 미국을 어디로 몰고 갈지 알 수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3세계에 값싼 노동력이 널려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산업 경쟁력이다. 인력만 줄이는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고급 기술과 높은 숙련도, 창의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코트라가 한-중 수교 15돌을 맞아 중국 기업 312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중국 기술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앞선다”는 응답이 50.6%로 절반을 넘었다. 무역협회도 최근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의 수가 중국이 958개인 데 반해 한국은 59개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기술적 우위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할 상대는 미국보다는 중국일 것이다. 당장의 수출 증가라는 단맛에 젖어 산업 경쟁력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생존기반이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삼성전자에 대해 소니의 워크맨이나 애플의 아이팟처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신제품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은 그 의미를 되새겨볼 만하다.

정남기/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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