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08 18:16
수정 : 2007.10.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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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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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남북 정상회담은 연말 대통령선거 판도를 뒤흔들 중요 변수(變數)로 여겨졌다. 크게 나눠, 경계와 기대였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앞서가던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와 관련한 모종의 정치적 노림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음모론적 분석도 솔깃하게 퍼졌다. 반면, 범여권 사람들은 잘만 되면 ‘한반도 평화’ 이슈가 ‘경제’ 이슈를 덮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범여권 결속이 가속화해 정치 지형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치공학적 전망도 있었다.
정상회담이 끝난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바싹 달려들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비롯된 평화체제 구축 문제나 경협 확대 등이 정치·사회적 이슈는 되겠지만, 대선 구도의 골격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부분의 판단인 것 같다.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된다. ‘경제’는 ‘지금, 나의 문제’지만, ‘한반도 평화’는 ‘장차,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는 분석이 우선 가능하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에 견줘 국민적 흥분도 덜하고, 합의 내용이 구체적 검토와 준비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당장의 정치적 효과가 제한된다는 설명도 있다.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정도로 국민 의식이 성숙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설령 정상회담 성과를 정치적 힘으로 변환시키겠다는 꿈을 꾸더라도, 그렇게 할 동력과 장치가 이미 약해졌다. 대통령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노 대통령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경선 잡음과 내부 분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통합신당은 상황 변화를 활용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평화 이슈가 대선의 본격 쟁점이 되려면,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이나 보수 세력이 이를 적극 문제 삼아야 가능한 형편이다.
사실, 남북문제가 정치적 변수라는 전제 자체가 허구일 수 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는 16대 총선을 사흘 앞두고 발표됐지만, 선거 결과 제1당은 한나라당이었다. 최근의 몇몇 여론조사를 봐도, 대선주자들의 지지도는 정상회담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애초 한나라당이나 그 지지세력의 ‘남북 정상회담 경계론’은 엄살이거나, 수구적 시각에서 비롯된 착시일 수 있다.
그 어느 쪽이든 건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아도 그동안 한나라당 안팎에선 정상회담 경계론 말고도 온갖 경계론이 무성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대선에 위협 요인이 되지 않을까’를 기준으로 보다 보면, 눈이 삐뚤어지게 된다.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올바른 정책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든 상대와 다르게 가려는 태도도 이런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추진된 부시-이명박 면담의 불발 소동이 그런 것이다. 나아가 정상회담을 ‘반보수연합을 추진하려는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 등으로 몰아붙이는 보수세력 내 일부의 시각은 더 위험하다. 착시에서 비롯된 대결적 사고는 자칫 국제 정세의 흐름에 뒤처지는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한나라당의 공식 견해는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환영한다는 쪽이다. 정상회담 합의 내용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비핵·개방 3000’ 공약이나 ‘신한반도 구상’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몇 가지 작지만 중대한 인식차는 있다. 하지만 보는 방향만은 비슷한 셈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그만큼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가 돼야 한다. 더는 정치적 이해득실로 남북관계를 바라보지 말자는 얘기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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