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1 18:16
수정 : 2007.11.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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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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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삼성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젊은이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 브랜드는 뿌듯한 자부심을 안겨준다. 그러나 한발짝 물러서면 또하나의 삼성이 있다. 권력집단이자 거대한 성이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행정·사법·경제 등 곳곳에 영향을 끼친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이젠 전혀 귀에 설지 않다.
삼성 때문에 정책이 굴절을 겪는 일도 적지 않다. 예컨대 금융 계열사 보유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한 ‘금산법 개정’ 논란이 수년간 이어진 건 삼성 때문이었다. 법 개정으로 실질적 영향을 받을 곳은 금융사를 고리로 그룹을 지배하는 삼성뿐이었다. 생명보험회사 상장 문제가 20년 가까이 해결되지 못했던 것도 삼성생명이 걸려서였다. 금융감독원의 담당 임원이 좌절을 느끼고 사퇴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동걸(현 한국금융연구원장)씨는 2005년 이런 말을 했다. “특정 거대 재벌그룹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금융산업에서 원칙과 법치가 흔들려 금융 선진화의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거대 재벌은 삼성을 지칭한다.
참여연대가 낸 ‘견제받지 않는 권력, 삼성을 말한다’(삼성보고서)는, 삼성이 어떻게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지 한 단면을 보여줬다. 임원으로 있거나 사외이사·재단이사 등으로 ‘삼성맨’화한 관료들만 2005년 현재 100여명에 이른다. 학계 87명, 법조계 59명, 언론계 27명의 전·현직도 삼성에 발을 담고 있다. 이들은 삼성으로 간 뒤에도 ‘선배-후배’ ‘형-아우’ 하며 옛 둥지와 끈을 이어간다. 참여연대는 “삼성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을 아예 장악하려 한다”고 했다. 이런 진단이 과할 수는 있으나, 삼성이 평소 관리하고 있는 인맥을 통해 정책로비를 하고, 불법·편법 행위에 대한 방패를 쌓고 있다는 것만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삼성의 힘은 곧 총수 일가의 힘으로 여겨지지만, 이제는 그렇게만 보이지도 않는다. 삼성을 움직이는 그룹 핵심조직과 삼성 안에 있는 핵심 경영층 자체가 하나의 권력집단화한 모습도 보인다. 그 성 안에서 은밀히 이뤄져온 일이 일부 세상으로 나왔다. 그룹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돈이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로 은밀히 관리돼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관리실태가 밝혀질 수도 있는 ‘메가톤급’ 폭로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정기적으로 ‘떡값’을 돌리며 검찰 고위간부들을 관리해 왔다고도 했다.
이제 삼성은 발가벗겨지는가.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작은 상처만 입고 봉합할 게다. 검찰도 국회도 시늉은 하겠지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삼성 파헤치기에 적극 나서리라곤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은 어떨까. 김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을 통해 ‘삼성 차명계좌’를 폭로한 게 언론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 보자. <경향신문>이 2면에 4단으로 그나마 제법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12면 3단, <동아일보> 12면 2단, <중앙일보> 10면 2단. <한국일보> 7면 3단으로 손바닥만 하게 다뤘다.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그것도 ‘논란’ 또는 그런 주장이 있다는 정도다. 기사 가치 판단이야 각사가 하는 것이나, 이해하기 어렵다. 삼성 쪽은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잘 막았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삼성은 1면을 비롯해 여러 면에 걸쳐 크게 보도한 한겨레를 ‘꼴통’ 신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삼성한테 끝내 약이 될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는다. 무엇이 국가뿐 아니라 삼성의 장래에 진짜 약이 될지, 우리도 삼성도 진정 고민해 봐야 한다.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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