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5 18:19
수정 : 2007.11.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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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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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관절염 치료제는 어떤 것이든 효과가 좋지 않다. 그래서 환자들은 신약 광고를 보면 ‘혹시’ 하는 기대감을 갖는다. 의사는 약효가 개선됐다면서 신약을 권한다. 그러나 결과는 비슷하다. 약값이 더 오를 뿐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 스위스 노바티스의 미국 자회사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던 더글러스 왓슨의 얘기다. 또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복제약들이 오리지널약과 동일한 안전성과 효능을 가지며, 상당한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약효가 비슷하다면 선택 기준은 뭘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제약업체들의 병의원 로비 실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리베이트(처방사례비)와 랜딩비(채택료)가 많은 약이 우선이다. 제약회사들은 처방 금액의 10% 안팎을 리베이트로 의사에게 준다. 소득에 잡히지 않게 몰래 주는 뒷돈이다. 때로는 그 비율이 20~30%까지 올라간다. 신약을 채택할 때 받는 랜딩비는 훨씬 더 많다.
실제로 한 제약회사는 2005년 자사 소염진통제를 연간 1억2천만원 이상 처방하는 조건으로 병의원들에 25%에 해당하는 리베이트 3천만원을 현금으로 줬다. 전북의 한 의원이 과잉진료로 4500만원의 과징금을 내게 되자 처방 금액을 연간 1억5천만원으로 올리기로 하고 30%에 해당하는 4500만원을 다시 지원했다. 과잉진료 의사가 과징금을 내기 위해 더 많은 과잉진료를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몇몇 병원은 항진균제를 쓰는 대가로 약값의 20~35%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본업이 뭔지 의문이 든다. 의사는 약 처방이 많을수록 리베이트가 많아지니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또 같은 약이라면 리베이트 비율이 높은 약을 선택하게 된다. 겉으로는 약효 차이를 들어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면서 뒤로는 뒷돈을 많이 주는 복제약들을 마구 사용해 온 것이다.
모든 비용은 약값으로 전가돼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환자는 의사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 조금 길게 얘기했다 싶으면 바쁜 시간을 뺏지 않았나 스스로 불안해한다. 의료 현장의 의사소통 문제를 다룬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데브라 로터 교수와 노스이스턴대 주디스 홀 교수의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보통 8초 이내에 끼어든다. 물론 다시 얘기할 수 있으나 마찬가지다. 그 많은 진료비와 약값을 부담하고도 환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고작 8초의 발언권이다. 미국이 이 정도면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한 가지 더 기억을 더듬어 보자. 2000년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병의원에 처방전을 두 장씩 내도록 했다. 하나는 약국 제출용, 하나는 환자 보관용이다. 의사들은 보건의료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반대했다. 한 장은 되지만 두 장을 주면 ‘절대’ 안 된다고. 7년이 흘렀다. 종합병원을 제외하고 처방전 두 장을 주는 병의원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의료법 위반이다. 그러나 제재를 받는 의사는 없다. 수백만원씩 뒷돈을 받아 챙겨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학술회의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도 제약회사가 돈을 다 내준다. 심지어 리베이트 대가로 유효기간이 임박한 약을 대량 처방해 재고 처리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고도 의사들이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무법천지가 한국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에선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값비싼 보험료 때문에 4700만명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 보자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의 의료보험은 미국의 사보험 제도보다 낫다. 하지만 수천억원의 돈이 이렇게 빠져나가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어려워지고 보험료는 오르고 있다. 환자 대우는 의료 후진국 미국보다 못하다. 우리 대선 주자들은 과연 이 문제에 관심이나 갖고 있는 것일까?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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