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19 18:43
수정 : 2007.11.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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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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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대부분의 선거는 1, 2위 두 사람의 대결로 귀결된다. 세 후보가 팽팽하게 정립(鼎立)하는 구도는 실제 선거에선 찾기도 힘들고, 있어도 오래 가지 않는다. 강자에 대항할 세 규합을 시도하거나 이기는 쪽으로 세몰이를 하려 하기 마련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도 역시 이파전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이파전이다. ‘이명박 대 이회창’이나 ‘이명박 대 정동영’이 아니라, ‘이명박 대 이명박’이다. 주요한 상대 후보들이 그의 대안을 자처하거나, 반대 세력 구축에만 힘을 쏟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서로 다른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이명박 한 사람을 두고 호·불호의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두 ‘이명박’의 대결을 한심하게 볼 것만도 아니다. 선거의 본래 의의대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다투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한 ‘이명박’은 많은 이들에게 ‘그나마 나은 대안’이다. 지난 5년 동안 비정규직은 380여만명(2002년)에서 570여만명(2007년)으로 200만명 가까이나 늘었다. 586만명(2007년 1분기)에 이르는 자영업자 상당수에겐 경기회복이 남의 얘기다. 올해 4년제 대학 졸업자 가운데 정규직 취업자는 절반에도 못미친다. 이들에겐 주가지수나 경제지표의 호전을 내세우는 참여정부의 자기 자랑이 혐오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안을 요구한다. 설령 흠이 있더라도 당장의 어려움을 풀 수 있는 화끈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면 다 용서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럴 것 같은 정치인이 그나마 이명박이라는 것이다. 달리 설명하면, ‘분배’의 정의를 내세웠다가 그 분배에조차 실패한 정권 대신 ‘성장’으로 파이라도 키울 것 같은 정치세력을 선택하려는 것이다. 다만, 그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그는 또 정권교체의 상징이다. 정권교체는 경제와 함께 이번 선거의 핵심 화두가 됐다. 참여정부가 정치적·정책적으로 실패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경선을 통해 뽑힌 그는, 정권을 맡겠다는 제1 야당의 정통성 있는 후보다.
다른 ‘이명박’은 또한 많은 이들에게 ‘더없는 재앙’이다. 결정적인 흠이 많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었고, 자신의 회사에 아들딸을 위장 취업시켜 탈세를 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을 어긴 것이다. 위장전입, 투기에 가까운 부동산 투자 등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확인된 것 말고 다른 의혹은 더 심각하다. 비비케이(BBK) 주가 조작에 실제로 관여했다면, 그는 우리 경제체제의 작동을 심각하게 위협한 중죄인이 된다. ㈜다스의 차명 보유도 사실이면 나라를 속인 것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 편법과 탈법을 서슴지 않아온,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추한 뒷모습들이다.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이것까지 용인해야 하는지, 진보나 보수 모두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가 집권한 이후는 어떨까. 많은 이들이 그가 ‘존경받는 국가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걱정한다. 그를 두고 정부가 부동산 투기나 탈세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을까, 무슨 수를 쓰든 돈만 벌면 된다는 풍조가 퍼지지나 않을까, 증시 작전세력은 어디까지 단속할 수 있을까,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편법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따위를 떠올리게 된다. 무릇 모범과 기준이 무너진 사회는 혼돈에 빠진다.
한 달 뒤 선택의 날을 앞두고 찍을 후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식으로 이명박 한 사람을 놓고서라도 고민을 해야 할 일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고민과 선택을 회피하기엔 너무 중차대한 문제 아닌가.
여현호 /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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