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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6 18:52 수정 : 2007.11.27 09:55

정남기/논설위원

아침햇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중 한 명이자 1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거부 마사 스튜어트 리빙옴니미디어 회장. 그는 2001년 12월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 불가 통보가 나오기 하루 전에 관련 회사 주식을 팔았다가 쇠고랑을 찼다. 애초 혐의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4만5천달러의 손실을 회피했다는 것이었다. 내부자 거래 혐의는 빠져나갔지만 전화 녹취기록을 지우려 했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공무집행 방해와 위증죄가 적용돼 5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뒤 5개월의 가택연금, 18개월의 보호관찰이 뒤따랐다. 불과 5천만원 때문이었다.

미국은 원래부터 부정부패가 없고 법이 엄정했을까? 그렇지 않다. 19세기 후반 철도산업이 한창일 때 기업인들은 정부에 줄을 대 철도건설 보조금을 타내는 게 일이었다. 그 대가로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엄청난 현금과 주식을 받아챙겼다. 유니언퍼시픽이란 회사는 새 철도노선의 보조금을 타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한 뒤 주식을 정치인들에게 건네고 매년 300%의 배당금까지 줬다. 건설업자들도 공사 대금을 부풀리거나 아예 공사를 하지 않고 정부 돈을 타냈다. 물론 뒤를 봐주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정치인들은 공직 임명권을 팔아 재산을 불렸다. 오늘날 미국의 사법체계는 이런 쓰레기 더미 위에서 탄생했다.

우리도 10~20년 전까지 부정부패가 극심했다. 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의 얘기다. “90년대 초 사무관 시절 동료와 기업인 한 명이 어울려 식사하면서 고스톱을 했죠. 판돈으로 2백만원씩을 돌리더군요.” 특별한 반대급부 없이 찔러 주는 돈이 지금 기준으로 500만~1천만원은 됐다는 것이다. 그런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 이후 많이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생각했다. “하급직들에선 부정부패가 약간 남아 있지만 상층부는 거의 없어졌다”고. 그러나 요즘 회의가 든다. 과거에 비해 정말 나아진 것일까?

현직 국세청장이 부하 직원으로부터 6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청장이 그렇다면 다른 직원들은 어떻겠는가. 2002년 대선 후보들에게 수백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뿌렸던 삼성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각계각층에 뇌물의 그물망을 펼쳐놓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지율 1위인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부동산 투기, 주가조작 연루, 자녀 위장취업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다. 부패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정부, 사법당국, 언론의 태도다. 법원은 지난 9월 1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700억원을 횡령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대해 강연과 기고를 조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현직 법무장관이란 사람은 가당치 않은 국가 신인도 타격 운운하면서 삼성 비자금 특검법을 흠집내기에 바쁘다. 검찰이 삼성에버랜드 편법상속 의혹을 제대로 수사해본 적이나 있는가. 몇몇 언론들은 비자금 수사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란 여론을 조성하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다른 재벌기업 회장은 “비자금 수사는 기업을 망신주는 일”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이쯤 되면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것인지 감싸고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부정부패는 어느 나라나 있기 마련이다. 차이는 그것을 다루는 태도다. 그게 나라의 수준은 결정한다. 마사 스튜어트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18개월의 보호관찰 처분까지 내린 미국이 정상일까, 비자금 수사하면 기업활동 위축되고 나라 망신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우리가 정상일까. 진짜 나라 망신은 누가 시키는 것일까?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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