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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0 19:08 수정 : 2007.12.10 19:08

여현호 /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번 대통령 선거는 특이하다. 과거와 같은 열기가 없다. 길거리나 술집, 직장이나 인터넷 어디에서도 후보를 열성으로 지지하는 이를 찾기 힘든다. 지는 쪽만 그런 게 아니라, 이기는 쪽을 지지한다는 사람들 역시 시들해하긴 한가지다.

그래선가, 투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투표율이 떨어지는 게 그동안의 추세이긴 하지만,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대선 사상 최저인 60%대 초중반에 그칠 것 같다고 한다. 선거 결과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투표율은 낮아진다니,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투표장에서 멀어지는 데는 정치현실에 대한 혐오나, 자신의 선택이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무력감 따위가 깔렸기 마련이다. 뭉뚱그리자면 정치체제 작동 방식에 대한 불신과 좌절이다.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현상은 또 있다. 지난 8일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사람 가운데 35.0%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9.9%가 이회창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치면 절반에 가깝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가 5년도 안 돼 정반대로 바뀌는 게 으레 있는 일일 수는 없다. 사실상의 양당 구도였던 우리 정치의 전통에서 보면, 정치틀 자체를 흔드는 일대 사건이다.

사랑이 어떻게 바뀌느냐는 식으로, 변심한 옛 지지자들을 탓할 일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어느 세대보다 민주화의 열정이 뜨거웠던 30·40대, 곧 386의 상당수가 이전엔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가 됐다면, 제구실을 못한 과거의 정치적 대표에 대한 실망이 그만큼 컸다고 봐야 한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이 대표로 선택했던 정치세력은 지지자들의 뜻에 맞는 정책을 펴지도, 사람들을 잘살게 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대표’라고 뿌듯해할 자부심도 주지 못했다. 그런 세력을 언제까지 지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금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를 자신의 대표로 온전하게 인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이들 상당수는 여전히 자신을 진보적이거나, 최소한 중도적인 사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정치적 대표성의 혼란이다.

기존 지지층으로부터 불신을 받기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범보수의 분열이 이를 웅변한다. 지지자 가운데서도 그를 못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겨레> 조사에선, 검찰 조사로 비비케이 관련 의혹이 풀렸느냐는 물음에 이명박 후보 지지자의 30% 이상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표는 찍지만 믿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이들 말고도, 이 후보에게 이런저런 흠이 있어 존경할 순 없지만 일은 잘할 것 같으니 지지한다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곧, 공동체의 모범이자 기준인 지도자가 아니라 일꾼을 뽑겠다는 심리다. “우리 가운데 지혜와 덕성이 뛰어난”, 온전한 의미의 대표는 아니다. 역시 선택지가 제한된 데서 비롯된 모순이다.

이렇게 께름칙한 기분으로 치러야 할 선거가 이번으로 그치지는 않을 게다. 내년 4월 총선에선 투표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이합집산도 극심해질 게다. 이쯤 되면 유권자들에게 지금 같은 양자택일만 계속 강요할 순 없다. 우선, 선택을 바라는 정치세력부터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실력과 내용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도 어렵다면 사람들의 다양해진 선택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게끔 정치체제를 고치는 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여현호 /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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