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3 18:48
수정 : 2007.12.1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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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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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지난 2일 대만 타이중 국제야구장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간 야구경기는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한판이었다. 한국의 3 대 4 석패였다. 결과보다 더 아팠던 건 과정이었다. 한국팀의 작전은 ‘위장’이었다. 선발투수는 물론이고 타자의 타순도 경기 한 시간 전에 발표한 명단과 달랐다. 일본팀은 당황했고, 경기 초반 그 작전은 먹혀드는 듯도 했다. 규칙 위반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반칙에 가까운 변칙이었다.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의욕이 앞섰겠으나 신사적이지 못했다. 이날 한국은 승부에서도 스포츠맨십에서도 졌다. 후자가 더 쓰리다. 만약 한국이 이겼다면 일본 쪽은 ‘위장오더’를 두고두고 문제 삼았을 테고 국제 야구계에서 한국은 꼼수나 쓰는 팀으로 낙인 찍혔을지도 모른다.
위장, 거짓이란 말들이 요즘 자주 들려온다. 이명박 후보의 수차례 위장전입 전력과 자녀 위장취업 사실이 드러난데다, 거짓말과 위장재산 의혹도 끊임없다. 청와대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 신정아씨의 거짓말과 학력 위조 사건도 세간을 흔들었다. 삼성의 차명계좌와 비자금 의혹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정·재·관계 권력층에서만이던가. 대학입시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이 시행되니, 이를 노리고 인근 도시 부모들이 자녀를 전학시키려고 대거 농어촌으로 위장전입해 갔다. 위장 사실이 드러나고 거짓 의혹이 제기돼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자리는 요지부동이고, 이젠 당당한 승부를 펼쳐야 할 스포츠 경기에서마저 그런다. 어쨌든 이기고 얻는 게 최선이 돼 가고, 이런 것들을 그저 그려려니 하며 보는 세태가 걱정스럽다. 위장과 거짓 불감증 시대가 깊어가고 있다.
동물도 위장과 거짓행동을 한다. 찰스 포드라는 정신의학자는 <거짓말의 심리학>에서 동물의 다양한 위장 행동을 소개한다. 계절에 따라 다른 보호색을 내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위협을 받으면 자신을 더 무섭게 보이도록 하는 동물들도 많다. 개가 꼬리를 치켜들거나 털을 세우는 것도 몸을 더 크게 보여 위협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에 서식하는 뒷부리장다리물떼새는 공격자가 나타나면 그를 향해 급격히 하강하며 고주파수 소리를 낸다. 고주파수 소리가 이른바 도플러 효과를 통해 공격자를 놀라게 함으로써 알과 새끼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새에겐 다른 동물에게 상해를 입힐 능력이 거의 없다. 거짓 행동으로 작은 이득을 얻는 새도 있다. 새 무리에서 ‘파수꾼’ 구실을 하는 새는 적이 접근할 때 경고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 파수꾼이 새끼들 때문에 더 많은 먹이가 필요할 때는 종종 거짓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새 무리가 많으면 먹이가 금세 바닥난다. 그런 때 거짓 신호를 보내면 새들은 흩어지고 파수꾼은 그 틈에 필요한 먹이를 얻는다. 그러나 동물의 위장은 약육강식이란 정글법칙만 적용되는 야생에서 살아가거나 종족을 보전하기 위한 생존법일 뿐이다. 더 많은 권력과 부,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사람 사회에서도 위장과 거짓이 횡행한다면 그 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 규칙을 어긴 위장과 거짓이 잠시 동안은 타인에게서 이득을 뺏어올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그들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위장과 거짓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극단적으로 가면 남는 것은 불신과 끔찍한 정글법칙뿐이다. 찰스 포드는 거짓은 습관화하고 심하면 병이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부모나 기성세대한테서 거짓을 배운다고 했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신뢰와 신의가 중요”하다며 올해의 한자로 주저없이 ‘믿을 신’(信)을 들었다.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와 후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병수/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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