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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7 22:03 수정 : 2007.12.17 22:03

정남기/논설위원

아침햇발

거짓말로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람은 아마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1972년 6월 선거기간 중 워싱턴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장비를 설치하려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과 무관하다고 발뺌을 하다가 거짓말이 들통나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결정적인 계기는 백악관이 사건 은폐를 지휘했다는 범인의 증언이었다. 의혹이 커지자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닉슨은 위기에 몰렸다. 닉슨은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를 해임하고 법원의 증거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면서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거짓말을 증명하는 녹음테이프가 나오고 하원 탄핵안이 통과되자 결국 사임했다. 2년2개월 만이었다. 덕분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닉슨에겐 ‘거짓말 대통령’이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코앞에 다가온 대통령 선거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비비케이 주가조작 연루 의혹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비비케이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공언해온 이 후보가 스스로 “비비케이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2000년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공개됐다. 첫해에 28.8%의 수익률을 냈다고 자랑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선거는 불과 하루 남았다. 비비케이 의혹은 결국 특검으로 가게 됐다. 어쩌면 대통령 당선자가 기소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이 후보는 ‘일단 당선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나라당도 10년 만에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미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대선에서 이기고, 비비케이 특검을 무사히 빠져나온다 해도 이 수렁에서 헤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집권 5년 동안, 아니 훨씬 긴 시간을 자신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허우적댈 수도 있다.

일단 ‘거짓말하는 대통령’이란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가장 명백한 증인은 비비케이를 설립했다고 떠들고 다닌 이 후보 자신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풀려날 김경준씨가 있다. 비비케이 회장이란 명함을 건네받은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 그를 인터뷰했던 많은 언론인들도 있다. 한발 물러나 검찰 수사대로 비비케이가 김경준씨 소유라 해도 거짓말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김씨가 설립한 비비케이를 자기 회사라고 공공연히 거짓말하면서 투자 유치하고 다녔다는 것 아닌가. 잔뜩 거짓말해 놓고 “동업자 홍보 차원에서 그랬다”고 하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또 “비비케이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관여한 적이 없다”는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기 행각을 벌인 사람이 김씨인지 이 후보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돌아오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비밀스런 공작도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비비케이 의혹은 밝혀내는 것 못지않게 덮기도 어렵다. 우선 많은 증인들이 널려 있다. 대권에 다가간 후보이기 때문에 숨죽이고 있을 뿐 권력의 추가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증언과 증거들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것이 권력의 생리다.

냉정을 찾아야 할 쪽은 한나라당이다.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 후보 말만 믿고 따라가다가 회생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작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도 비비케이라는 정치적 무덤에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지금 비비케이 의혹의 종말을 향해서가 아니라 더 깊은 수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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