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3 19:18
수정 : 2008.01.0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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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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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스냅사진의 한 장면처럼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는 14대 국회 말인 1995년인지 96년인지의 한순간이다. 여의도에서 행사를 마친 민자당 의원들이 다른 행사를 위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동할 때다. 우연히 국회의원 둘이 탄 차에 편승해 밖을 내다보니 전국구 초선이던 이명박 의원이 혼자 멀뚱히 서 있었다. 차에 탄 의원이 그를 태우자며 동료 의원에게 했던 말은, 저 사람은 지금 친하게 지내려는 이도 딱히 없으니 우리라도 챙겨주자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95년 5월, 그는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큰 표차로 떨어졌다.
지금은 다르다. 이 당선인 주변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좀 과장하면 교수만 2천여명, 전직 언론인은 200여명이 모여 있다고 한다. 정치인이나 관료 등등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핵심 측근이나 막후 실세도 한두 사람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가 진짜 ‘이명박의 사람’일까.
세 김씨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그의 복심은 그리 많지 않다. 십수년 간난신고를 함께한 이가 드물다. 최측근이라는 정두언 의원도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이재오 의원은 수하라기보다 호형호제하는 동지적 관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측근 비서진도 짧게는 몇 달 전, 길어야 5∼6년 전 합류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주변 사람 상당수는, 어려운 때가 아니라 대권에 가까이 가 있다는 기대를 받던 영광의 시기에 합류했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공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그를 당선시켰다는 ‘대세’도 여러 깃발들이 모여 이룬 것일 터이고, 어딘가에선 둑이 터지는 걸 막으려 밤을 새운 이들도 많을 게다. 당선인 처지에선 다 공신이다. 그러나 한고조 유방의 중원제패 뒤 책사 장량이 했던 말처럼, 천하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관직에 임명해야 할 사람은 많은 게 ‘논공행상’의 어려움이다. 큰 싸움 뒤의 갈등과 분열이 패자뿐 아니라 이긴 쪽에도 생기는 것은, 저마다 승리에 기여한 몫만큼 자신에게 상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개 증권이 아닌 ‘정권 투자’를 한 이들은 애초 ‘투자 위험’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런 기대가 편가름과 다툼, 호가호위를 낳는다. 곧 정권 내 권력투쟁이고, 측근의 전횡이다. 그렇다고 그런 기대를 채워주려 하다가는 ‘코드 인사’ ‘보은 인사’ 따위에 빠지게 된다. 곧 그들만의 잔치다. 모두 국민의 외면을 받는 지름길이고, 국가를 해치는 독이 된다. 전임자들이 이미 다 보여준 일이다.
이제 새 정부 인사를 앞둔 당선인은 냉정해져야 한다. 토사구팽까지는 아니더라도, 산을 넘는데 물 건넌 배를 지고 갈 일은 아니다. 토사구팽이면 또 어떤가. 유방이 제왕 한신과 양왕 팽월 등 큼지막한 땅을 차지하고 있던 공신들을 살해한 것은 자손들에게 ‘유씨 천하’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봐야 한다. 의리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라를 지켜야 할 군왕으로선 해야 했던 일일 수 있다. 송태조 조광윤이 건국 뒤 술자리에서 안온한 노후를 대가로 장수들의 병권을 회수한 게 그나마 평화적이었다.
이 당선인도 필요하다면 측근도 버리고, 공신도 외면해야 한다. 좀 외로워지더라도 자신을 도와줬다는 사람이나 세력에 휘둘리지 말라는 얘기다. 인사 문제만 말하는 게 아니다. 그가 내건 대로 실용주의를 제대로 해나가자면 정권교체의 주역이라고 자처하는 기존 보수세력으로부터도 거센 저항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게다. 어차피 새 정부는 ‘이명박’이라는 문패를 달고 간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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