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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7 18:42 수정 : 2008.01.07 18:42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이명박 정부는 호언대로 올해 6%, 재임기간 평균 연 7%의 경제성장률을 이뤄낼 수 있을까? 거품을 일으킬 만한 부양책 없이도 목표를 달성한다면, 잠재성장률이 4%대라고 했던 정부와 경제 연구기관 관계자는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리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법질서 회복’과 반기업 정서 해소 등을 통해 투자가 늘어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투자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는다면 길은 두 가지다. 경기부양책을 쓰든가, 아니면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거다. 실적을 중시하는 이 당선인의 성향으로 보아 후자는 수용하기 어려울 게다. 어떻게든 목표는 이루려고 하리란 건 무리한 짐작이 아니다. 그러자면 통화정책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하지만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한국은행은 형식상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 한은 총재와 그를 수장으로 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난감하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도 자리를 지킬지를 눈여겨 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그의 임기는 2년여 남았다. 이 총재는 ‘매파’라고 할 정도는 아니나 원칙을 중시하는 안정론자다. 취임 후 네 차례 콜금리 목표를 올렸다. 풀린 돈이 너무 많고, 인플레 압력도 높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가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려면 돈이 풀리고 금리도 떨어져야 하는데, 이 총재는 녹록하지 않다.

과거 김영삼 정부는 출범 초기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폈다. 그러나 조순 당시 한은 총재는 정부 뜻을 ‘받들지 않고’ 돈을 풀 수 없다고 버텼다. 조 총재는 정부 출범 뒤 한 달도 안 돼 물러났다. 임기는 3년 남아 있었다.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정주영씨에 대한 명예훼손소 취하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한테 밉보인 일도 있지만, 통화정책을 둘러싼 견해 차이도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 전 총재는 다른 사례다. 노무현 정부 초기 그를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임기를 존중하는 쪽을 택했다. 이성태 총재가 조 전 총재와 박 전 총재 둘 중 누구의 전철을 밟을지, 이는 이명박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듯하다. 박 전 총재 사례가 가까운 전례이긴 하나, 정권 교체의 의미가 다르다는 게 변수다. 게다가 이 당선인의 유력한 경제참모인 강만수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최근 “경제성장의 제1법칙은 저세율과 저금리”라고 했다. 이 총재와의 사이에 큰 간극이 보인다. 이 총재가 자발적으로 물러나지는 않아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알아서’ 물러나게 하기란 여반장이다. 그렇게 해서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면 경제정책 운용은 쉽겠지만, 대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무너뜨리고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거품을 키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제 금융시장의 시선도 우호적이지 못할 게다.

1979년부터 87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폴 볼커의 일화는 이 시점에서 되새겨 볼 만하다. 7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타개를 위해 그는 자신을 임명한 지미 카터와 뒤이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금리·초긴축 통화정책을 폈다. 81년에 13.5%에 이르던 물가상승률은 83년 3.2%로 떨어졌다. 볼커가 없었다면 90년대 미국경제 호황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우리 경제에도 인플레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맞물려 우리나라에도 볼커같은 인물에 대한 요청이 커지는 시기다. 이명박 정부가 경기부양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공염불이다.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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