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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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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2002년 12월 나온 논문 ‘대통령직 인수·인계의 제도화에 관한 연구’에서 박재완 당시 성균관대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대통령 당선인은 현직 대통령이 재선된 경우가 아니므로 자연히 대통령직을 수행한 경험이 전혀 없다. 따라서 ①새로운 것에 대한 무지 ②엄청난 목록의 과업에 압도당해 일을 서두르는 성급함, 그리고 ③모든 것을 바꾸려는 교만함이 각각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통령직의 인수·인계를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새 정부의 출범 초기 1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상당한 학습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국정 운영의 혼선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거쳐 이제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내정된 그의 그때 말이 괜한 걱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통령직 인수위 활동이 마무리 단계인 지금, 상당 부분이 현실로 드러났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당선인과 인수위는 통일·국방·외교 분야에서 한-미 동맹 강화론 말고 딱히 평가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 분야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동과 사회복지, 여성 문제도 주요 국정과제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대신 경제에 대한 언급과 강조만 무성하다. 대체로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교육과 영어 문제를 놓고선 이것저것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가 다시 거둬들이는 오락가락이 반복됐다. 얽힐 대로 얽힌 칡덩굴의 이쪽 저쪽을 조금씩 파다가 만 꼴이다. 그 와중에 ‘교육부를 폐지하겠다’던 초반의 기세는 사라졌다. 성급함의 결과다. 정부조직 개편을 두고서도 이를 새 정부의 오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통일과 어울리지 않는 주장을 서슴지 않은 이를 통일 문제의 책임자로 하겠다는 대목에선 지난 수십년의 통일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오기까지 느껴진다. 물론, 사람의 일이니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잘해 보려다 그리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잃어버린 10년 동안 보수세력이 절치부심한 결과’라면 얘기가 다르다. 10년 준비 치고는 너무 어설픈 탓이다. 그 이유가 멀리 있진 않을 게다. 먼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상대를 비난하는 데만 열중하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우리 정치를 한참 뒤로 돌리는, 실망스런 모습이다. 그게 아니라면 보수세력의 힘과 능력이 지금 이 순간 결집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그런 조짐은 대선 뒤 몇몇 인사로 드러났다. 기용된 이들은 대부분 당선인과 이런저런 연(緣)이 닿는 사람들이다. 선거 캠프에서 일했거나, 같은 대학 출신이고, 그도 아니면 교회를 함께 다닌 인연이 있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실세 측근과의 또다른 인연이 회자된다. 그런 ‘끼리끼리 인사’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다른 목소리가 귀에 닿지 않으니, 일이 제대로 매듭지어지기 어렵다. 지지세력의 실망은 국민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정권 주도층은 갈수록 소수화한다. 지난 정부에서 겪은 일이다. 모두 당선인만 바라보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여러 우려와 불만이 있어도 이를 당선인에게 전달할 통로도, 견제할 장치도 마땅찮다는 말이 이젠 한나라당 안에서 나오고 있다. 당선인 주변에선 ‘아니오’라고 말할 이도 많지 않다고 한다. 당선인의 개성이 워낙 강한데다, 자리와 정책적 배려 등 집권 초의 온갖 권력이 집중돼 있는 탓이다. 집권초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그렇게 강했다.이른바 범보수세력이 그들이 비판해 온 노무현 시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면 할말부터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몇 해 뒤 지금처럼 후회를 남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여현호 /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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