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1 20:02
수정 : 2008.02.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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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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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정책 당국자들이 낙관론을 펴다가 끝내 낭패를 겪는 사례는 많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주택금융 부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2006년 한 모임에서 미국 주택가격 거품을 우려하는 지적에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정책 당국자의 오판은 그 자신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중대한 정책 왜곡을 낳을 수 있다.
사흘 뒤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다. 연 7% 경제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 진입이라는, 이른바 ‘7·4·7’ 깃발을 높이 든 정부다. 의욕은 좋을지 몰라도 한국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딴판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지뢰밭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밖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다 국제 원자재값 폭등 등 세계경제에 짙은 불확실성이 드리워져 있다. 안으로는 물가불안이 심화하고, 부동산 시장도 불안하다. 대폭 늘어난 중소기업 대출은 언제 연쇄부도 사태로 이어질지 모른다. 무역수지는 두 달 연속 적자다. 이 모든 게 얽혀 정책 처방을 어렵게 한다. 성장을 위해 내수를 부추기자니 물가와 무역수지, 부동산 시장 거품이 걸리고, 물가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성장을 미뤄야 하는 정책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7·4·7 목표에 부정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물들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단순한 진단 차이라면 별반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책 목표로 돼 있고 그에 맞춰 정책 수단들이 동원될 것이란 데 문제가 있다. 만에 하나 가능할지는 모르나 정책은 현실에 터를 둬야지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서는 안 된다. 무리한 목표는 무리한 정책을 낳고, 거기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장밋빛 구호는 경제주체들에게 잘못된 기대를 주어 합리적 의사 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걱정스럽다는 거다.
새 정부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여기면서도 경제심리를 북돋울 요량에서 계속 내세우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희망을 밝히는 수준에 그쳐야지 정책 목표로 삼아 스스로 멍에를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데 어느 정책 당국자인들 압박을 느끼지 않을까. 성장률 목표에 매달리다가 성장도 안정도 잃고 긴 후유증을 앓았던 경험이 적지 않다.
‘경제 대통령’이라며 호언했는데 금방 거둬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머쓱하겠지만 그래도 대외 여건이 급변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 변명은 된다. 4월 총선 때문에 당장 7·4·7을 접는다고 선언하기 어렵다면 총선 뒤에라도 그렇게 하는 게 정책 운신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더 얻는 길이다. 멍에를 벗고, 경제여건과 가능한 정책 수단 등을 다시 점검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그랬다가 기대 이상의 열매를 맺는다면 업적으로 남을 게다. 한반도 대운하나 재벌정책 등 새 정부의 성장정책 방향도 결국은 7·4·7이란 목표에서 비롯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내면 정책을 다루는 자세도 한층 냉철해질 터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올 한해 6% 성장률 달성에 급급하기보다는 5년간 7%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체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기본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건 옳은 인식인데, 7% 목표를 재차 강조하니 실상 하나마나 한 소리가 됐다. 안정과 고성장을 함께 이루는 게 말처럼 쉬우면 경기침체란 경제학 용어는 진작 없어졌을 게다. ‘사즉필득’(死則必得) 이라고 했다. 비워야 얻는다.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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