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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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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이런 걸 ‘데자뷰’(기시감)라고 하나? 옛날에 보거나 겪은 듯한 일을 요즘 여기저기서 자주 겪게 된다. 이런 것들이다.새 대통령을 맞은 정부 부처들은 ‘실용’에 한창이다. 경제나 사회 분야만이 아니다. 외교에서도 국익을 위해선 누구와도 손잡는다는 실용 외교, 북핵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자원 외교가 강조된다. 국방개혁 역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라는 이명박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 온통 ‘실용’이니, 기업이 아닌 정부에서도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됐다.
일사불란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이런 모습은 여러 번 봤던 풍경이다. 몇 해 전 관가는 ‘혁신’ 구호로 도배질됐다. 청와대에는 참여혁신수석과 혁신관리수석 자리가 만들어졌고, 부처마다 혁신기획관이 임명됐다. 혁신 리더 발굴이나 혁신방안 마련에 온 부처가 몇 달씩 들썩였다. 그보다 이십 몇 년 전에는 ‘정의사회 구현’이란 알쏭달쏭한 구호가, 또 거기서 십여 년 전에는 ‘근면·자조·협동’이 관공서 벽을 장식했다.
일사불란의 형제는 전횡이다. 일사불란이란 게 하나가 전체를 이끄는 꼴이니, 힘을 쥔 이가 많을 수 없다. 이번도 그렇다. 내각과 청와대, 그리고 주요 권력기관에 들어가는 데는 몇 몇 실세를 거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 정설이 됐다. 상왕, 멘토, 정치적 동지, 핵심 측근 따위의 수식어를 단 사람들이 그들이다. 공천도 이들의 손에 좌우된다고 한다. 권세를 쥐었다고 제멋대로 하는 모습이 박철언씨나 김현철씨 등 옛 정부 실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고약한 ‘기시감’은 ‘구 정권 인사 퇴진론’에서다.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달래고자, 또는 정치적으로 빚을 진 사람들을 취직시키기 위해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사장·이사장·감사는 물론 사외이사 자리까지 비워 달라는 이런 행태는, 부끄럼을 모르는 벌거벗은 욕망일 뿐이다. ‘낙하산’이 허용됐던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얘기다. 군인이 교육부 장관이나 공보처 장관이 됐던 그 시절 그때처럼, 자신과 생각이 맞는 사람들로 채우겠다는 일사불란의 열망이기도 하다.
어쩌면 ‘실용’이란 개념 자체가 위험한 출발점일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실용을 ‘제 잇속 차리기’로 이해한다. 이익과 목표를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결과 지상주의, 염치를 잊고 밥그릇을 챙기는 뻔뻔함이 여기서 나온다. 또 있다. 실용은 이론과 친화력이 높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경험에서 주로 배우게 된다. 그런데, 개인의 경험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업적이나 앞으로 하겠다는 주요 공약이 대규모 토목사업인 게 우연이 아니다. 실용이 제대로 실용적이려면, 서로 다른 이력과 생각들이 결정 과정에 함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실수와 잘못을 줄일 수 있다. 곧 민주주의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같이 하기’를 않을 때다. 경험을 앞세운 실용주의가 ‘일사불란’과 결합하면 ‘잘못된 만남’이 된다. 지도자가 그리 하면 전횡이다. 제 시각만 강요해 자신의 복사판만 양산한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다 보니, 다른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으로만 여겨 이것저것 아무데나 함부로 간섭한다. 나라를, 조직을 망치는 첩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험담 가운데는, 그가 말을 마구 하다 보니 텔레비전에도 막말로 ‘뜬’ 방송인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다 동의할 순 없지만, 정치가 우리 사회에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친다는 뜻일 수 있다. ‘이명박 아류’는 또 얼마나 나올까.
여현호 /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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