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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4 20:32 수정 : 2008.03.24 20:32

정영무/논설위원

아침햇발

취임 한 달, 실용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지향은 분명하다. 성장과 기업활동이 우선이다. 여러 연구기관들이 올해 4%대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지만 목표를 6%로 높여잡았다. 이를 위해 규제는 풀고 세금은 낮추려 한다. 기업에 대한 애착은 24시간 통화 가능한 핫라인 개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요컨대 “돈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규제를 철폐해서 돈을 더 벌게 해주자. 그렇게 하면 그 부가 흘러넘쳐 서민층도 형편이 나아진다. 부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전체 이익에 합치된다”는 논리다.

시장의 절대강자인 자본의 손을 꼭 잡은 것과 달리 노동계에는 묵묵히 더 열심히 일할 것을 훈육한다.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농민은 더 어려워질 처지다.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아니며 더 심한 시장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성장과 기업활동에 도움되지 않는 요소들은 억제하거나 배제한다는 뜻이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계층적으로 편협하다. 지난 대선에서 어떻게 압도적 지지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는 무대책에 무관용 원칙을 들이대는 편협성에도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이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의 반사효과가 컸다. 중산층은 물질주의적 호소에 편승해 집값과 주식값 상승을 기대했을 수 있다. 정작 서민층은 경제살리기로 형편이 좀 나아질 것이란 기대와 함께, 한나라당은 몰라도 밥을 굶어 본 이명박 후보만큼은 서민의 편이라는 환상을 가졌음직하다.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는 국밥집 광고는 호소력을 발휘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 양극화 해소 같은 진보적 요구들이 그에게 투사된 것이다.

하지만 서민을 위한 정책은 없다. 교육·의료의 공적기능을 강화한다든지 대형 소매점의 입점을 규제한다든지 하는 정책은 부처 업무보고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실은 서민들의 기대를 배반한다. 서민생활을 걱정해 물가 관리에 나선다고 하지만 미력한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정치세력을 지지한 아이러니는 이미지와 실재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후보는 이미지를 부풀렸고 유권자는 그 이미지에 끌렸다.

서민들의 삶은 지난해 5%대의 성장률을 기록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상위 20%의 평균소득은 하위 20%의 7.66배로 더 크게 벌어졌다. 성장률이 높아져도 그 과실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만 집중될 뿐 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 성장 혜택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는 적하이론은 작동을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까지 부어가며 성장률을 1%포인트 높이면 서민의 삶은 뭐가 달라질까.

이 대통령은 선거 때도 잠은 잘 잤는데 경제 걱정으로 잠을 못 잔다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든 서민층은 당장 죽을 지경이다. 어린 딸에게 엄마가 절도를 시키고, 목수가 공중화장실 문짝을 뜯어 파는 세상이다. ‘기업이 잘돼야 서민도 먹고 살 것 아닌가’하는 말은 맞지만, 자칫 이웃집이 불 타는데 내 정원에 한가하게 물 뿌리는 격이 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시장에 권력만 넘겨주고 경쟁에서 밀려난 약자를 정부가 제대로 보듬지 못한 데 있다. 현정부는 그나마 있는 제어장치를 풀고 노동시장 유연화, 법인세 인하, 수도권 규제완화를 향해 내달릴 태세다. 이런 과제들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지난 대선은 경제 살리기의 반사효과와 기대효과로 좀 들뜬 상태에서 치러졌다. 학습효과 속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선 ‘누구를 위한 경제 살리기인가’ 잘 따져봐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영무/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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