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31 20:10
수정 : 2008.03.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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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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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지난해 10월 말부터 다섯 달 넘게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건희 삼성회장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비자금 차명계좌의 실체나 금품로비 정황 등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사법적 조처가 내려진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게 이건희 회장의 불구속이다. 조준웅 특검팀이 막판까지 고심했던 게 그의 구속 여부였다. 특검팀 안에서도 정몽구 현대 회장과 형평성 등을 거론하며 그를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정 회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거액인 수조원대의 차명계좌를 운용하는 등 각종 불법행위에 연루돼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특검팀은 논란 끝에 불구속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몰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회장을 구속하면, 삼성뿐 아니라 한국경제에 끼칠 악영향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건강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도 참작됐다.
수조원대에 이르는 차명계좌의 실체도 분명하게 가려졌다. 그동안 계좌 명의자들은 차명이 아니고 실제 자기 돈이라며 차명 사실을 부인해 왔다. 하지만 특검은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이 돈이 차명 재산이라는 삼성 쪽 시인을 받아냈다. 다만, 그 자금의 출처는 분식회계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아니라 이병철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이라는 삼성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수조원대의 차명 자금을 자기 이름으로 실명화할 수 있게 됐다. 전·현직 삼성 임원들의 이름을 빌려 불안하게 관리하던 차명자금이 이 회장 돈임을 특검이 공인해준 것이다.
이른바 ‘떡값 검사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함으로써 그들이 고위 공직자로서 떳떳하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도 특검의 성과 중 하나다. 직접 돈을 전달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까지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끝까지 부인함에 따라 ‘증거 불충분’,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그동안 뇌물수수 사건은 돈을 준 쪽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특검은 김 변호사가 문건이나 사진 등 구체적인 ‘자료’로 이를 입증하지 못하자 무혐의 처리했다. 금액이 500만∼2천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 정도의 ‘소액’까지 처벌하면 청와대나 국가정보원, 검찰 등 국가 중추기관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
이번 특검 수사의 최대 수혜자는 이재용씨라고 할 수 있겠다. 삼성으로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재용 3세 체제를 안착시키는 게 지상 과제였다. 특검은 이학수 부회장 등 몇몇 핵심 인사들은 형사처벌하면서도 이재용씨와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등은 문제 삼지 않았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 세대의 가신들만 처벌됨에 따라 삼성은 3세 체제로 넘어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삼성은 이 회장과 함께했던 가신들을 정리하고 이재용-김인주 체제 구축이 목표였는데, 특검이 이를 대신 해준 것이다.
결국, 조준웅 삼성 특검팀은 수조원대의 차명계좌를 열심히 찾아 이건희 회장에게 돌려주고,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정지작업을 해주었으며, ‘떡값 검사들’에 씌워진 멍에를 벗겨 이명박 정부의 충직한 공복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쯤 되면 조준웅 특검은 삼성비리 ‘특별검사’가 아니라 삼성 ‘특별변호사’라고 이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4월1일, 만우절 아침의 이 ‘횡설수설’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필자도 그것이 궁금하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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