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1 14:43
수정 : 2008.04.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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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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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8대 총선에서는 여당 대 야당보다 여당 대 여당의 싸움이 더 치열했다. 선거 구호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1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강부자’ 내각과 대운하 문제 등 호재를 선거 이슈로 만들지 못하고 맥빠진 견제론만 내세웠다. 공천 탈락 불만 때문이기는 하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내건 쪽은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였다. 여당 대 여당 싸움의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고, 박근혜 전 대표가 이겼다.
한나라당은 이른바 절대 안정의석이라는 168석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과 장·차관들은 관권개입 비판을 무릅쓰고 사실상 여당 지원에 나섰다. 또 박 전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 박근령씨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자신의 지역구로 내려간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유세에 전혀 힘을 보태지 않았다. 측근인 강창희 최고위원의 대전 사무실만 잠시 다녀간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168석을 달성할 경우 승리의 공은 이 대통령이 고스란히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 박 전 대표는 자연스레 용도폐기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명박당 만들기는 실패했다. 과반 확보로 총점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이명박의 힘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500만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대선을 이겼던 ‘이명박 프리미엄’ 속에서 치러진 총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과반 턱걸이 성적표는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반면에 박근혜의 위력은 막강했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친박연대 14명을 비롯해 모두 26명 정도가 한나라당 바깥에서 당선됐다. 당내의 30여명을 합하면 60명 안팎의 박근혜 친위대가 생겼다. 현직 대통령의 대척점에 선 반대세력이 여권에서 집권 초반부터 이처럼 강력하게 존재했던 적이 없다.
이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 등 수족이 날아가는 이변도 박근혜의 힘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권의 제2인자, 3인자인 이재오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패배한 것은 문국현·강기갑 후보가 일으킨 바람뿐 아니라 박사모가 벌인 ‘손볼 대상’ 낙선운동 탓도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의 또다른 핵심 참모인 박형준 의원과 정종복 의원도 박사모의 낙선운동에 걸려 고배를 마셨다.
박 전 대표에 밀려 ‘이명박 구상’이 어그러짐에 따라 이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졌다. 비주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과 타협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독식과 독점·독주가 아니라, 앞으로 이 대통령은 싫건 좋건 여권 내 야당세력인 박 전 대표의 협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전격적으로 다시 “국정의 동반자”임을 강조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여권 내부 문제와 관계없이 야당과 관계도 간단찮다. 양적으로는 153 대 81로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크게 이겼지만, 질적으로는 별로이기 때문이다. 16개 시도 가운데 민주당은 대구·경북·울산 세 곳을 뺀 13개 시도에서 모두 당선자를 냈다. 더구나 영남에서는 발판 두 곳을 지켰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10개 시도에 그쳤다. 전국정당 기준에서는 민주당보다 못하다. 특히 민주당이 충청권에서 선전하고 지역색이 가장 약한 제주도를 석권한 것은 의미가 크다. 4·3 항쟁 격하 움직임 등 이명박 정부의 퇴행에 대한 민심의 경고가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이 해야 할 답은 명백하다. 여당 내부든 야당이든 정치적 반대세력과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명박 구상’이 패배했음에도 대운하를 밀어붙이는 등의 독선을 계속한다면 과반수 붕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물론 수도권 민심부터 먼저 돌아앉을 것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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