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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4 21:30 수정 : 2008.04.14 21:47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마지막 순서로 총수가 검찰에 불려나온다. 포토라인 앞에서 사과하고 책임을 약속한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지난번 엑스파일 사건 때도 대선자금 수사 때도 그랬다. 경영쇄신안이 발표되고,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지난 1월10일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온 삼성 특검도 낡은 영상을 되풀이해서 보는 듯하다. 핵심 혐의는 대부분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죄부를 주는 분위기다. 특검과 삼성만 놓고 보면 삼성의 완승에 가깝다. 그러나 과거의 강이 미래로 유유히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특검과 교전 중인 ‘이건희 캠프’는 제2의 전선에 맞닥뜨려 있다. 달라진 민심이 제2전선이다. 특검이라는 제1전선은 국지전이며 휴전 또는 정전도 가능하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제2전선이 대단히 넓게 위협적으로 형성돼 있다. 전혀 새로운 전장을 직시하지 못하면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왜 독일인이 히틀러의 독재를 수용하고 그에게 복종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인간은 자유와 함께 고독과 불안을 느끼고 외부의 권위에 의존해 정신적 안정을 구하려한다고 설파했다. 뇌관이 터지기 전까지 삼성 문제를 놓고 보면 프롬의 통찰은 유효하다. 우리는 삼성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그 실체가 무엇인지 대략 짐작했다. 그런데도 독일 사람들이 1차 대전 뒤 자유를 내준 것처럼, 삼성에 대해서는 진실의 잣대를 들이대기를 주저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보았다. 먼저 자아의 독립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힘을 얻기 위해 외부와 자신을 융합하려는 경향이다. 잃어버린 일차적 속박 대신 새로운 이차적 속박을 찾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러한 심리의 특징은 권위를 찬양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권위 그 자체이기를 원하고 타인이 복종하기를 갈망한다.

또 한 가지 메커니즘은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의지나 사고, 나아가 감정까지도 타인에게 위임한다. 실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의 암시를 받은 것을 자신의 판단이나 바람으로 간주해 버린다. 결국 바깥의 정보에 조정당해 정체성을 잃고 만다.

오랫동안 권력기관은 삼성의 권위에 복종했고, 일반인은 판단을 위임했다. 삼성이라는 자본권력과 이건희 신드롬이 진실을 직시하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회장은 위기의식을 강조한 신경영과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창조경영으로 삼성을 한국 대표기업으로 키웠다. 이건희는 삼성, 삼성은 국민기업이라는 등식은 신화가 됐고, 이 회장의 허물은 삼성을 위해, 나아가 나라를 위해 덮도록 요구됐다. 법의 예외가 용인됐던 것이다.

내부자 폭로는 그런 불편과 부자유를 더는 받아들일 수 없게끔 만들었다. 불법 승계,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의 어마어마한 실체가 손에 잡힐 듯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검과 삼성의 숨바꼭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삼성이 단 16억원의 증여세로 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시켰고, 수조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조직적으로 정·관계 불법 로비를 했으며, 이 회장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헌법으로 간주되는 ‘회장 지시사항’ 문건은 이 회장이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했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이건희 신드롬을 낳고 있다. 새로운 신드롬이 주는 사회적 스트레스는 임계점에 다다랐다. 공과 과의 저울추도 과쪽으로 기울고 있다. 공으로 과를 누르기에는 역부족이며, 오직 과를 과감히 털어냄으로써 저울추를 되돌릴 수 있다. 구체제의 뇌관이 터졌으면 구체제는 종식돼야 한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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