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05 21:04
수정 : 2008.05.0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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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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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네브래스카주 외딴곳 아담스 농장에는 소 8만 마리가 비육되고 있으며, 3㎞ 앞에서도 악취가 진동했다. 소들은 우리에 갇혀 분뇨와 오물더미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여전히 동물성 사료가 사용됐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은 필수다.” 2006년 10월 <한국방송> ‘스페셜’이 보도한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이다. 담당 피디는 “나는 지옥을 보고 왔다”고 말했다. 최근 방영된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광우병 공포를 키웠다는 엉뚱한 화살을 맞았지만, 광우병 위험에 대한 경고와 불안심리는 뿌리가 깊다.
남의 나라 일로 여겨지던 광우병은 2000년 독일에서 발병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집단 공황을 유발했다. 이듬해 초 언론의 경쟁적 보도로 광우병 신드롬이 전국을 휩쓸면서 한동안 갈빗집에 손님이 끊기고 정육점 쇠고기는 외면당했다. 광우병 괴담은 애완동물 사료로 수입되는 소 혈분이 소 배합사료로 쓰인다고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도자기용으로 수입됐다는 소 골육분도 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비약되고, ‘우리나라 소도 안심할 수 없다’ ’나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퍼졌다. 10여일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수그러들었지만, 광우병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것을 위안으로 삼기에는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 그때 경종을 울려댔던 일부 언론들이 지금 실제 상황을 맞아서는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안전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며 검역은 제2의 국방으로 불리는 민감한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라고 ‘제로 리스크’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위험이 얼마나 되고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충분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쇠고기의 안전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축산 농가의 생존권이다. 소비자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 먹지 않을 수 있지만 축산 농가는 직격탄을 피할 길이 없다. 가뜩이나 사료값이 폭등한데다, 유일한 재산인 소값은 뚝 떨어졌다. 정부 대책도 소규모 축산 농가에는 해당이 안 돼 대부분이 삼중고를 겪고 있다. 평택 축산 농민의 자살은 축산업과 농업이 처한 생존권 위협에 몰린 막다른 선택이다. 광우병 불안이 다가올 위험이라면, 축산 농가의 생존권 위협은 이미 들이닥친 해일이다.
쇠고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핵심 전제로, 2006년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위해 수입을 재개했으며, 이번에는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 무리한 양보를 했다. 그런데 쇠고기에 그치지 않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더 큰 파고가 예고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은 공공정책과 서비스 산업의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오지만, 농업에 특히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쇠고기로 축산 농가가 받는 충격은 전초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선 40%의 쇠고기 관세를 15년에 걸쳐 철폐하도록 했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 경쟁력은 커지게 된다. 게다가 세계 통상사에서 신기록이라고 자랑할 만큼 농업 분야에서 쌀을 제외한 전 품목을 개방했다.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당장 첫해부터 모든 농·수·축산물의 65%는 관세가 없어진다. 나머지 전략 품목 35%도 해마다 관세가 줄어 5~15년 뒤엔 관세가 완전히 없어진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60살 이상 농가 경영주가 60%나 되는 농업은 회복 불능의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농업은 몰락하면 회복이 쉽지 않다. 농촌의 발전 없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우리 농업에는 수천년 동안 생태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발달시켜 온 지식과 지혜가 깃들어 있다. 첫 단추를 무리하게 끼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상절차법과 국회의 내실 있는 심의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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