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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2 21:01 수정 : 2008.05.12 21:01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대통령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해도 되는가. 취임 석 달도 안 된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드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물론 현 정부는 국민의 직접·비밀선거로 선출된 정통성 있는 정부다. 따라서 선거 과정에서 내건 공약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갈 권한이 있다.

하지만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가 국민한테 어느 정도까지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볼 것이냐는 좀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 나라를 독재체제로 만들어도 된다는 무한정한 권한까지 주지는 않았을 터니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권한 위임 범위를 규정한 명문 규정이 없다 보니 이 정부는 온나라를 온통 자기 색깔로 바꾸느라 난리다. 그러면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사회를 뿌리째 재편하려 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경쟁과 효율을 최고 가치로 삼는 시장주의의 전면 확산이다. 민간부문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비효율의 상징처럼 돼 있는 공기업이나 정부 부문도 개혁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교육·의료·노동·복지 분야까지 이런 원칙을 적용할 경우, 우리 사회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다수 국민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가 아니라 끝없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돈과 권력과 배경을 갖고 있는 소수만을 위한 사회로 바뀐다. 이것은 청와대와 내각을 ‘강부자’나 ‘고소영’으로 채우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으면서 우리 사회를 이렇게 바꿔도 된다는 것까지 위임했는가.

대대적인 공공기관장 물갈이를 봐도 그렇다. 능력과 전문성 운운하지만 힘있고 돈되는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히려 한다는 것은 서로 뻔히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면서 해야 한다.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된 기관장들을 한꺼번에 몰아내는 것은 명백한 위법일 뿐 아니라 당사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파괴하는 ‘인격 살인’이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으면서 이렇게 위법적인 행위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 주었는가.

대외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과 일본을 순방하면서 이명박식 외교를 선보였다. 미국과는 ‘전략적 동맹’에 합의하고, 일본과는 ‘과거보다는 미래’로 나아가기로 했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그 본질을 보면 대한민국을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종속시키고, 일본에 대해서는 ‘불행했던 과거’를 다 잊자는 게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산 쇠고기 협상 논란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우리가 일본도 용서했는데 …”)이 쉽게 이해가 된다. 대한민국의 국익보다 미국의 이해를 우선시하고, 36년이나 한반도를 유린했던 일본의 과거를 그리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이 정부에 위임한 적이 있던가.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라는 내용의 선서를 한다. 그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돼 있다. 대통령이 됐다고 이 나라를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고 오만이다. 국민은 헌법에 규정된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줄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지, 국민 뜻과 어긋나는 ‘명박민국’을 만들라고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이 정부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벗어나 ‘명박민국’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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