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01 20:28
수정 : 2009.01.0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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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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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청와대가 새해 화두로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선정했다. ‘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이 말이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에 가장 잘 맞아, 추천된 여러 사자성어 가운데 뽑았다고 밝혔다. 부위정경이 유독 맘에 든 까닭은 무엇일까?
‘부위정경’이 말 그대로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일 수 있다. 위태한 나라를 바로잡는 일은 정치인이라면 사명으로 삼을 만하다. 지금이 위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께름칙하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는 굉장히 폭넓고 뿌리깊은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나라의 근본이 ‘기울어져’(傾) 있다는 생각일 게다. 혹시, 그는 바로 자신이 기울어져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제대로 서 있는 나라를 ‘바로잡고’(定) ‘떠받쳐’(扶) 보겠다고 뒤흔들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취객이 전봇대를 잡고 씨름하듯 말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볼 줄 모르는 그런 독선과 독주는 갈등을 일으키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다.
왜 하필 중국 북주(556~581)의 태조 우문태의 이야기에서 따왔을까도 궁금하다. 우문태는 유목민족인 선비족 출신으로, 서북 변방의 수비병으로 출발한 이다. 내란의 와중에서 급격히 출세했고, 북위 효무제를 독살한 뒤 대신 다른 왕족을 앞세워 서위를 건국했다. 그는 20여년 동안 실권을 잡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글의 출처인 <주서>에서 ‘부위정경’ 뒤의 ‘위권진주’(威權震主), 곧 ‘(우문태의) 위엄과 권위가 왕을 두렵게 했다’는 대목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지나친 생각일 수 있지만, ‘주’(主)를 왕이 아닌 주권자로 읽으면 섬뜩하다. 혹시,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이라면 국민쯤은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생각이 배어 있는 건 아닐까?
우문태와 이 대통령에겐 비슷한 점도 있다. 우문태는 낮은 위치에서 몸을 일으켜 장군이 됐고, 서른 살 무렵에 최고 실력자가 됐다. 이 대통령도 어렵게 자라 29살에 이사, 35살에 사장이 됐다. 이 대통령이 한국 샐러리맨의 신화이듯, 우문태도 동아시아 유목민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인물이다. 북주의 실질적 창업자이고, 병농일치의 부병제나 이·호·예·병·형·공의 6부제 등 수·당 세계 제국의 토대가 된 국가체제를 정비했다. 이 대통령이 그처럼 대한민국 웅비의 기틀을 닦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면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하겠다고 비판이나 이견 따윈 무시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더구나 ‘바로 잡는’ 목적이 여당의 ‘안정적 장기집권’이라면 사달이 날 위험은 커진다.
그런 위험은 이미 역사가 보여줬다. 우문태의 인사 정책은 철저하게 ‘관롱집단 우선’이었다. 관롱집단은 산시성과 간쑤성 일대 선비족과 토착 한족 지배층의 연합세력으로, 우문태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개국공신들이다. 우문태는 관롱집단의 각 집안 대표들인 8주국과 12대 장군을 군과 국가의 배타적 지배세력으로 삼았다. 중국 역사가 천인커는 이들이 서위와 북주, 그리고 수와 당을 개창한 지배집단이라고 밝혔다. 수 문제 양견이나 당 태종 이세민도 8주국 가문의 후손이거나 인척이다.
우문태처럼, 이 대통령의 인사도 주변의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들 우선이다. 그 정책도 소수, 1%만 위한 것이란 비판이 많다. 문화 대신 무력과 강권을 지나치게 숭상한 관롱집단처럼, 실용을 앞세운 힘의 논리만 들이댄다.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부위정경을 화두로 삼았을까? 불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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