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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2 20:49 수정 : 2009.01.12 20:49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얼마 전 방한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너무 놀라운 일은 한국의 학생들이 밤 11시까지 공부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은 지금의 교육제도를 깨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묻자 그는 삶의 모든 부분이 대량화를 넘어서고 있는데 한국의 교육은 산업화 시대에 맞춰져 있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가구당 빚이 4천만원을 넘어서고 가계 소득은 줄고 있지만 사교육비는 줄지 않는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입시경쟁에 한가닥 희망을 거는 당대의 고단한 삶이 투영돼 있다. 가계 소득의 20~30%를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부문에 쏟아붓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알면 토플러는 악성종양 진단을 내렸을 것이다.

예년 같으면 대학졸업자 55만명 가운데 공기업이나 대기업 같은 안정된 직장에 1할 정도가 들어갔겠지만 경제위기로 취업문이 닫힌 올해는 바늘구멍이다. 멀쩡한 젊은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직장에 적을 올리거나 비정규직의 바다로 헤엄쳐야 한다. 경제위기로 교육은 신분 상승과 불안 탈출의 유일한 출구 구실을 상실했다. 의료비까지 줄여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불안심리를 달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자본 교육이 가능한 부유층과 극히 예외적인 일부를 제외하면 승산 없는 포커판에서 계속 패를 돌리고 있는 셈이다.

‘내 자식만큼은 …’ 하고 바라지만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십대는 장래에 백수를 생각해야 한다는 십장생이 체험적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현실이다. 멀쩡한 아이들만 가위눌리고 ‘꿈은 무슨 꿈?’이라고 반문한다. 불안의 확대재생산과 동전의 양면을 이뤄 미래가 불안할수록 교육에 대한 집착도 커지지만 비상구가 없다. 신분 상승은커녕 유지조차 어렵다.

경제 살리기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과제다. 주요 선진국은 시장의 실패를 거울로 새로운 경제사회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성장률에 급급하지 않고 어떤 경제 살리기인가를 더 깊이 묻는 나라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동물적인 추동력을 멈추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한 동물적인 상황에 먹히고 싶지 않을 뿐이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정적 구제금융이 아니라 윤리적 구제금융”이라고 했다. 승자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승자독식 구조를 뜯어고쳐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절박한 갈림길에서 다수가 패배자로 전락하는 비극을 막고 주인이 되려면 사회적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주식회사의 구조조정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개인적 노력으로 요행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으로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직을 하더라도 취업훈련을 받고 재취업할 수 있는 사회보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불안의 확대재생산을 막고 배반의 교육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할 때 내수 침체와 저출산 위기도 풀릴 것이다.

민주노총 최대의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노·사·정 고통분담협의와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한 것은 미래를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노동자의 신분과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사회통합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해 길을 내주는 것이다. 다른 선택은 저임금과 노동 유연화로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부가가치는 낮아지며,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악순환이다. 청와대 지하벙커의 워룸은 그렇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전장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 거부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은 필연적 선택이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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