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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5 22:17 수정 : 2009.03.05 22:17

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형님’이 화났다. 마구 역정을 냈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 예정된 본회의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각으로 한 시간 넘게 열리지 못하자 폭발한 것이다. 주변이 일순 썰렁해졌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의원들을 찾아보겠다고 나섰지만, “거기, 앉아라!”는 ‘꾸지람’만 들었다. 형님은 “안경률이 어디 갔냐”고 다그쳤다. 동네 후배처럼 이름만 불린 안 의원은 집권당 사무총장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안경률인지 두경률인지 어디 갔는지 제가 어찌 압니까”라고 투덜댔다. 변명하는 투다. 한참 뒤 도착한 안 총장은 형님 바로 옆 자기 자리에 한동안 앉지도 못한 채 쭈뼛댔다. 2009년 3월3일 밤의 국회 풍경이다.

그동안은 그렇지 않은 척이라도 했다. 하지만 사투리는 급할 때 튀어나온다. 권력의 실상도 바로 그렇게 생생히 드러났다. 거대 집권당의 위세 등등한 당 3역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앞에선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다. 흥선대원군 같다는 ‘만사형통’ 앞에선 초라하기만 했다.

‘형님’의 힘은 요즘 부쩍 눈에 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2월 임시국회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민생 관련 법안을 먼저 처리하되 언론 관련법 등 쟁점 법안은 천천히 한다는 방침이었다고 한다. 야당 쪽과도 그렇게 조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형님이 바꿨다. 국회 문광위의 언론 관련 법안 기습상정도 “강하게 가자”는 형님의 말이 떨어진 직후에 벌어졌다. 형님은 이제 앞장서서 다그치고 독려한다.

덕분에 홍준표 원내대표 등은 한 달 남짓 사이에 한 입으로 몇 차례씩이나 다른 말을 하게 됐다. 자기 뜻대로 정치를 한다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다른 의원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농성과 몸싸움에 나선 초·재선 의원들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 속 ‘몹신’(군중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도 출신 분야에선 내로라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행동대원으로만 부리는 정치, 3·4선의 중진과 국회의장단까지 조연으로 동원하는 정치가 제대로 된 정치일 순 없다.

물론, 이런 풍경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옛 열린우리당의 모습도 보기엔 지금 한나라당과 비슷할 수 있다. 공천제도와 실세가 엄연한 마당에 정치인이 제 소신대로만 말하고 행동하기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줄서기와 눈치보기는 어느 때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형님’이 있다. 형님은, 대통령의 위임과 신임을 받아야만 힘을 얻는 이전 정권의 실세, 총애를 잃으면 힘도 잃는 이런저런 실세와는 다르다. 그 자신이 지분을 지닌 대주주다. 지금의 권력 구도를 6 대 3 대 1로 풀이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형님 이상득 의원, 그리고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그렇게 권력을 나눠 행사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정치적 과장일 수 있지만, 적어도 권력 주변에선 형님의 힘을 그렇게까지 보고 있다는 얘기는 된다. “내가 이명박 똘마니냐”는 형님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 ‘형님’이 여의도에 있다. 권력은 수렴하기 마련이니, 대표건 당 3역이건 그 앞에선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그는 여당 의원들을 다독이는 따위 공식적인 당 지도부가 할 일까지 하고 있다. 답답해서 그랬겠지만, 그러다 보면 171석의 거대 여당은 그 없이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 그나마 가끔 나왔던 ‘다른 의견’도 줄어들 게다. 권력 지도에서 여당이 ‘0’으로 굳어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된다. 가뜩이나 위태롭다는 정당정치와 대의정치가 더 흔들릴 것이다. 형님이 지금이라도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야 할 이유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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