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9 19:10
수정 : 2009.03.09 19:41
|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
아침햇발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지침 파문’은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조사가 진행중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부당한 재판 간섭이 명백하고,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이미 나와 있다. 더 늦기 전에 신 대법관은 스스로 사퇴하고, 대법원장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재판의 독립성 확보 대책을 마련하는 게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처다.
재판의 독립을 자부하는 소신 있는 법관들에겐 안 된 얘기지만, 이번 재판 간섭 전자우편이 공개됐을 때 솔직히 별로 놀랍지 않았다. 전자우편을 통해 상세한 내용이 드러났을 뿐 그동안 직간접으로 사법부를 접해 본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법관들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얼마나 자신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밖에서 보는 사법부는 그리 공정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니 하는 상투적인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동안 몇몇 재판 과정을 보면서 ‘사법부가 정말 이래도 되나’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정권과 자본에 관한 사법부의 태도는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았던 촛불시위와 용산 참사를 돌이켜 보면, 사법부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처신하는지 잘 드러난다. 촛불시위에 대한 대응은 이미 밝혀진 대로고, 용산 참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가 불타 숨지고 자신은 무릎뼈 부상 등으로 깁스를 하고 있는 철거민조차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떼어주는 등 검찰의 강경몰이를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자본에 대한 재판부의 굴신은 더 심하다. 대표적인 게 삼성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태도다. 삼성 사건에 관한 한 대한민국 사법부는 수사 초기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에서부터 대법원의 소부 변경까지 일관되게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사법부로서야 모든 게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고 하겠지만, 법관의 양심에 비춰 볼 때 정말로 한 점 부끄럼 없이 처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사법부의 치부가 밝혀졌다는 데 있지 않다. 치부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이를 축소하고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사법부의 대응 자세가 더 충격적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남들은 모를 것이라는 자기기만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자기변명을 하면서, 때로는 그 정도 잘못은 다들 하고 사는 것 아니냐는 자위를 하면서, 또는 출세를 위해 가서는 안 될 길을 간다. 하지만 그것이 외부에 의해 들춰지고 비판이 제기되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치는 게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사법부의 도리다. 그럼에도,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까지 가세해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데 더 큰 절망감을 느낀다.
용산 참사가 났을 때, 그 사건의 본질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말미암은 철거민 사망’이 명백함에도 이 정부는 ‘철거민들의 폭력으로 발생한 화재사건’으로 둔갑시켰다.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뒤바꾼 셈이다. 이번 전자우편 사건에 대한 사법부 자체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용산 참사처럼 본질은 덮어둔 채 일부 좌파 판사와 언론의 사법부 흔들기로 결론짓고, 전자우편 내용을 ‘재판 간섭’이 아닌 ‘사법행정 행위’로 해석해 면죄부를 주고 끝낼지도 모르겠다. 그리되면 용산 참사로 ‘정부’를 잃은 국민은 다시 ‘사법부’까지 가슴에서 지워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닮아가려는 이용훈 대법원장, 제발 사법부가 그런 길만은 가지 말기 바란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