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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9 22:37 수정 : 2009.03.19 22:37

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신영철 대법관은 엘리트다. 스물두 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동기 중에서 늘 선두를 달렸다. 승진도 빨랐고, 남들은 한둘도 하기 힘든 요직을 두루 거쳤다. 우리 사회 인재 양성 시스템의 눈으로 보면, 그는 가장 우수한 인재 가운데 하나다.

그런 그가 지금껏 겪지 못한 어려움에 빠졌다. 그는 촛불사건 재판의 내용과 절차에 개입한 잘못이 법원 조사로 확인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대로 가면 현직 대법관으로선 처음으로 징계를 받게 된다. 국회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탄핵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 부끄러운 이름은 역사에 기록된다.

그런데도 그는 침묵하고 있다. 30년 몸담은 법원이 자진사퇴를 종용하는 모양새인데도 한사코 버티고 있다. 사퇴를 당연시하는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도 참석했다. 이제는 여러 사람이 당혹해하고 있다. 도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저렇게 버티는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보니 온갖 억측이 나돈다. 약점이 큰 탓에 나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외부’에서 강하게 말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가 물러나면 그 배후로 시선이 쏠리게 되고, 촛불 처벌의 명분도 약해진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생래적으로 보수인 법원에까지 색깔론을 들이대고 좌우나 세대 따위 분란을 일으키면서 그를 애써 편들려는 모습이 이런 억측에 힘을 보탠다.

신 대법관 스스로 ‘다퉈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결국 남는 게 판결이듯, 그로선 이번 사건도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겼음 직하다. 윤리위가 경고 정도의 약한 징계를 권고한다면, 신 대법관이 끝까지 버티려 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그리되면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법원의 개혁 의지는 어그러진다.

어느 쪽이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외부의 정치적 계산에 휘둘렸건 제 이해타산을 앞세웠건, 눈앞의 일에 이리저리 망설이는 꼴로 비칠 뿐이다. 사법의 독립성을 걱정하는 법관의 자세는커녕, 말로라도 개인 이해보다 몸담은 조직의 안위와 위신을 앞세우는 공직자의 모습도 아니다. 신 대법관 같은 엘리트 판사의 삶에서 무엇이 빠졌기에 이러는 것일까?

신 대법관은 옛날의 잣대로 보면 소년 등과한 선비다. 조선 시대 유가 지식인, 선비는 지식교육에 앞서 엄격한 윤리교육을 받았다. 그런 선비 정신에는 공적인 일을 앞세우고 개인적인 이해는 뒤로 돌리는 ‘선공후사’(先公後私)도 있고,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도 있다. 선비 또는 군자가 은자와는 달랐기에, 벼슬에 나아가는 것과 물러서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는 ‘출처진퇴’(出處進退)는 특히 중요한 덕목이었다. 북송의 사학자 사마광은 ‘출처진퇴가 분명한 군자, 한번 얻은 지위에 집착하는 소인’을 비교했고, 율곡 이이는 “나아가고 물러남을 구차하게 하지 않고 의리(사회윤리 의식)에 맞게 하는 게 선비의 출처”라고 말했다. 그 시대 선비들의 행동 기준이 그러했다.

그런 기준을 지금 적용하려 들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덕목 대신 우리가 뭘 배웠는지는 되물어야 한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숨도 쉬기 힘들었던 5공의 강압 통치 아래서 사회생활을 한 이들에겐 무엇이 행동의 기준일까. 혹, 어떻게든 우기고 버텨 생존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모습이 바로 그렇기도 하다. 공교롭게 신 대법관 말고도, 용산 참사의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 그리고 주변에서 말리는데도 보궐선거에 나서려는 정동영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모두 또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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