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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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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은 정작 승전을 한달 앞둔 1945년 7월 총선에서 참패한다. 대공황기의 실업과 가난으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한 영국인들이 노동당에 압승을 안겨줬다. 처칠은 충격 속에서 총리 관저를 떠났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은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당수였다. 노동당 정부는 완전고용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대대적인 사회개혁에 나선다. 이른바 ‘애틀리 컨센서스’로 불리는 사회적 합의다. 애틀리 컨센서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와 함께 전후 30여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복지국가의 모델이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로 무너지고 시장의 부활을 알리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주도하는 시장 중심의 개혁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시대적 조류로 형성되면서 애틀리 컨센서스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치된다. 그러나 작은 정부와 감세를 주요 정책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 역시 30년을 넘기지 못하고 금융위기와 함께 종말을 맞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60여년을 건너뛰어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국가의 부활, 애틀리 컨센서스의 재등장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작은 정부론은 온데간데없고 대규모 재정확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말로는 아직 규제완화와 감세를 외치고 있지만 왠지 공허해 보인다. 궁금한 것이 있다. 일시적으로 재정확대로 가는 것인지,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작은 정부론을 수정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것저것 되는 대로 다 하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재정이든 감세든 모든 정책은 잠재적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재정확대 정책은 과다한 정부 지출로 인플레이션과 국가재정의 악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시장 주도형 경제정책은 과잉생산과 신용팽창으로 인한 위기를 주기적으로 맞게 된다. 어떤 정책을 쓰건 적절한 관리가 따르지 않으면 파탄을 맞을 수 있다. 정부가 28조9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는 308조원에서 올해 367조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추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한번 고삐가 풀린 재정지출은 국민의 기대심리 때문에 쉽게 거둬들이기 어렵다. 정부는 우리나라 재정의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 특히 감세와 재정확대를 동시에 추구할 경우 국가재정의 급속한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감세로 말미암아 지난해 이미 11조원의 세수 결손을 보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을 번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표현했듯이 전대미문의 위기 국면이다. 이쯤에서 감세 문제를 정리하고 가야 한다. 재정확대가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무리한 감세 정책은 유보하거나 포기하는 게 맞다. 상속세, 법인세, 종부세 등 부유층에 대한 감세는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당면 과제와도 맞지 않는다. 시장과 국가를 오가면서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의 변화는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준다. 이명박 정부가 신봉하는 작은 정부론의 대가 밀턴 프리드먼은 “수탉이 해를 뜨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고, 역사의 필연적 힘”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이론도 시대에 맞았기 때문에 각광받았다는 얘기다. 우리는 금융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감세와 재정확대를 오가면서 좌충우돌하는 위험한 정책은 여기서 그쳐야 한다.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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