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30 21:49
수정 : 2009.03.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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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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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금융기관 부실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투입되는 공적자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공적자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한다. 국회 동의를 받는 국채 발행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에 조성 방식에 대해서도 큰 논란은 없다. 남는 쟁점은 공적자금 관리 체계, 지원 원칙, 그리고 그 쓰임새 등에 대한 것들이다.
이런 쟁점들과 관련해선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공적자금은 두 차례에 걸쳐 조성됐는데, 1차 공적자금이 조성됐던 97~98년은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던 탓에 조용히 넘어갔다. 하지만 40조원의 2차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했던 2000년에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집요한 반대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나라당은 정부가 1차 공적자금을 마구잡이식으로 퍼부었다며 대통령 사과와 1차 공적자금 조성·사용에 관련된 책임자의 문책 등을 요구했다. 결국, 당시 정부는 공적자금 사용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함께 공적자금 관리를 철저하게 하기 위한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제정 등을 야당에 약속하고 겨우 국회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 만들어진 특별법에 따라, 민관 합동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가 만들어져 공적자금의 조성과 사용, 회수 등이 공자위로 일원화됐다.
하지만 이 정부는 아직도 공적자금을 통합 관리할 기구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쪽이 최근 공적자금의 운용을 총괄할 공적자금관리기구(가칭)를 한시적으로 두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 문제는 가닥이 잡혀갈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불투명하다. 공적자금 지원 실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공적자금 지원 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와 공적자금 회수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을 법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통합 조직 구성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공적자금 지원 원칙도 논란거리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지원 원칙은 최소 비용의 원칙, 손실 분담의 원칙 등을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명문화해 엄격히 지키도록 했다. 또한, 공적자금 지원 대상 금융기관은 정부와 경영정상화 이행 약정을 맺게 하고, 철저한 자구 노력을 전제로 공적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정부는 금융기관에 이런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 국민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엄격한 공적자금 지원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장 본질적인 쟁점은 공적자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공적자금을 금융기관 부실 채권 매입과 자본 확충 등에 사용하려 한다. 부실 금융기관 정상화를 위한 교과서적인 처방이긴 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왜 발생했는지를 돌아보면 이런 방식의 공적자금 지원을 통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제 구실을 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지원을 받아 정상화된 금융기관들이 경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주주이익 극대화 등을 위해 단기 성과에 집착함으로써 경제 전반을 오히려 멍들게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금융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해야 한다. 그 방안을 두고 세계적으로 은행 국유화 등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도 이런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다. 발 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해 공적자금을 과거처럼 부실 금융기관 정상화 자체에만 사용하려 했다가는 조만간 금융발 경제위기를 또다시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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