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02 23:01
수정 : 2009.04.0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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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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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이미 고인이 된 김윤환 전 의원은 막후 정치의 대가였다. 옛 민정당과 민자당에서 요직을 두루 맡은 그는 아슬아슬한 얘기를 곧잘 했다. 한번은 삼성이 낸 후원금이 기대의 반밖에 안 돼 돌려보냈다는 말을 했다. 그는 “선대 회장을 봐서라도 내게 그럴 수 있는 거야?”라고 열을 올렸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일제 때 사업을 시작하면서 당시 대구·경북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와 격려와 함께 물질적 지원을 받았다는 옛 얘기도 했다. 그는 삼성가의 큰아들 이맹희씨와 경북고 동기이기도 했다. 수십년 묵은 인연의 셈법이나 그 시절 정치권 정서로 보면 섭섭해할 만도 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주변과 맺은 인연도 오래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는 1970년대 초 김해에서 서른 안팎의 기업인과 세무공무원 사이로 만났다. 1975년부터 이웃 삼랑진에서 농협 조합장을 지낸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과 노씨 등의 인연도 그즈음 맺어졌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부산 출신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역시 박 회장과 수십년 인연이다. 친구인 천 회장 동생이 죽은 뒤에는 의형제처럼 지냈고, 처음 공장을 차린 곳도 천 회장의 집 한쪽이라고 한다. 박 회장은 부산·경남지역 정치인 사이에도 수십년 지기가 수두룩하다.
그렇게 인연이 오래되면 무람없어지는 모양이다. 삼가고 조심하는 것 없이, 서로 도와주고 밀어줬다. 형님이나 아우, 친구이고 또 우리 편이니 부담감은 물론, 좀 과한 일에도 죄책감이 없다. 친구 동생인 노무현 변호사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돈이 부족하다니 땅을 사줘 돈을 마련하도록 했고, 그 인연으로 또 노무현 의원이나 그 주변과 친해졌다. 노 전 대통령도 오래 알아 온 박 회장을 꺼릴 게 뭐 있느냐고 여긴 듯하다. 형님 친구는 남이 아닌 탓이겠다. 정대근 회장 시절 농협으로부터 휴캠스를 박 회장이 헐값에 인수하고, 노건평씨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에 나선 것은 이들의 오랜 인연에선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박 회장이 탈세와 비리 수사로 궁지에 몰렸을 때 수십년간 서로 끌어 주고 챙겨 준 ‘형님’ 천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아쉬운 때 도움을 받았을 정치인과 법조계나 국세청 등 관계 인사들은 박 회장에게 또 어떻게 보답했을까.
그리 보면, 박연차 사건은 옛날의 그림자다. 우리가 남이냐며 통 크게 도움을 주고받고, 그런 인맥과 네트워크를 유지하려 애쓰던 시절의 유산이다. 우리 편이라면 용서가 되고, 또 웬만한 일은 잘못이라고도 여기지 않았던 패거리 의식의 산물이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 지금은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됐다. 대선자금 수사의 홍역을 앓으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는 ‘돈 안 쓰는 선거’와 달리, 정치의 일상에선 아직도 여전한 유착 정치와 패거리 정치가 이제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검찰 수사의 시야도 여기까지 닿아야 한다. 정치자금 몇 천만원을 처벌하는 데 그친다면 이해할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탓이다. 그런 유착과 패거리 행태가 여야 어느 한쪽의 일만도 아닐 것이니, 괜히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다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비난을 자초할 일도 아니다.
조선 영조 때의 가객 김천택은 ‘가다가 중지곳 하면 안이 감만 못한이라’(가다가 멈추면 아니 가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임채진 총장 말마따나 “수사 결과에 대해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 할” 검찰의 처지가 바로 그렇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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