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4.09 21:49 수정 : 2009.04.09 22:56

정남기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잘한 일 가운데 하나는 정보통신부를 없앤 것이다. 정통부는 산업 육성이란 명분 아래 정보기술(IT)업체들 위에 군림하면서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다가 새 정부 들어 방송통신위원회로 통폐합됐다.

쓸모없는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통신요금 인허가와 단말기 보조금 단속이었다. 방통위 출범 이후 이런 규제들이 대폭 사라지거나 완화됐지만 통신시장에선 우려하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로는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한 규제였지만 실제론 잘나가는 통신업체들을 쥐고 흔드는 수단에 불과했다.

산업 육성(진흥) 업무를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내주고 주파수 관련 인허가 등 규제 업무만 맡기로 한 방통위가 다시 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방송통신발전기금 설립을 밀어붙여 지경부에 넘겼던 정보통신발전기금 일부를 되찾아왔고, 올해 들어서는 기업들을 산하기관처럼 부리면서 공공연히 ‘실지 회복’을 외치고 있다. 위원회 안에서는 승진 자리가 부족하니 조직을 늘려야 한다거나 합의제인 위원회가 거추장스러우니 아예 실·국장들이 전결권을 행사하자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온다.

방통위가 출범한 지 불과 1년이다. 하지만 설립 취지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대로라면 이전의 방송위나 정보통신부보다 더 강력한 방송통신부까지 밀고 나갈 기세다. 모든 정부 부처가 규제 완화와 조직 축소로 몸살을 겪고 있지만 방통위만은 예외인 셈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형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출범 때만 해도 초상집 분위기이던 방통위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위원장이 부임한 지 몇 달 만에 다른 부처를 압도할 만큼 발언권을 되찾았다. 방송통신진흥기금 설립안에 대해 애초 청와대도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성사시켰다. 최 위원장의 힘과 위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 위원장도 자신이 마치 방송·통신업계의 주인인 양 기업들을 시찰하면서 책임지지 못할 수십조원의 설비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방통위 출범 때 조직과 역할을 크게 축소시킨 데는 이유가 있다. 방송통신 분야의 규제는 해당 기업들에는 생살여탈권이나 마찬가지다. 또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따라서 그 권한을 최대한 제한하자는 취지였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직원들에게 민간 업자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청와대 행정관과 방통위 과장에 대한 성접대 사건을 보면 방통위가 가진 막강한 권한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행정부처의 권한이 강할수록 접대가 많고, 접대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게다가 막강한 위원장을 모시고 있으니 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는 단순히 접대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 어울려 룸살롱 가고 성접대를 하는 사이라면 돈봉투 또한 오가지 말란 법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형님’의 영향권 안에 있는 방통위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방송통신업계 위에 군림하려는 최 위원장이나 그를 내세워 호가호위하는 방통위 직원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권력 실세와 그 아래서 이권을 챙기는 공무원, 여기에 온갖 로비를 벌이는 기업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든 국민이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현정부에서 이처럼 치외법권에 있는 형님이 단지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실세로 불리는 형님들은 분야마다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번에 드러난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는 그들이 벌이는 잔치의 작은 부스러기일 뿐이다.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