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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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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영산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호남정맥의 곁줄기 하나가 나지막한 마을 뒷뫼로 이어졌다. 그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100여가구 남짓한 마을 앞에는 ‘앞내끌’이라 불리던 맑디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폭은 10~20m밖에 안 됐지만 물이 많을 때는 애들 키를 훌쩍 넘는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수량이 제법 됐다. 그 하천이 호남정맥의 남서쪽으로 흐르는 영산강의 지류 중 하나라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큰물이 질 때는 검붉은 황톳물이 넘실댔지만 평소엔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넘쳤다. 여름에 멱을 감으러 냇물에 들어가면 제방에 심어진 아름드리 왕버들의 분홍빛 실뿌리가 물속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바위틈에 숨어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잡을 만큼 맑은 물이었다. 냇물은 무지갯빛 혼인색을 띤 피라미, 납자루에서부터 각시붕어, 모래무지, 버들치, 메기 등 온갖 물고기들의 삶터였다. 영산강 하류 목포 앞바다에서 100여㎞를 거슬러 올라온 굵직한 민물 장어가 심심찮게 잡히기도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오후, 냇가 버드나무 가지 위의 청록색 물총새가 한참 동안 꼼짝 않고 물속을 꼬나보다 곤두박질하면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냇물이 굽이치는 안쪽으로는 제법 넓은 모래사장이 생겼다. 손톱만 한 크기의 가막조개(재첩), 길쭉한 말조개, 대사리(다슬기) 등의 서식처였다. 모래 속에 묻혀 있던 알에서 막 깨어난 여리디여린 자라 새끼들이 모래가루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뒤뚱거리며 앞다투어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도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그 냇물은 물고기만의 삶터가 아니었다. 그저 논물이나 대는 단순한 물길만도 아니었다. 마을 아낙들이 맘 놓고 시어머니 흉을 볼 수 있는 빨래터였고, 논일을 끝낸 사내들이 온몸에 묻은 새까만 개흙을 말끔히 씻어내는 목간통이었다. 어린애들에게는 한여름이면 개헤엄을 배우는 수영장이자 한겨울에는 썰매 타는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그 냇물에서 배우며 자랐다. 수백년을 그런 모습으로 흘렀을 그 맑던 하천이 썩어가고, 그 많던 물고기가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수를 예방하고, 농업용수를 확보한다며 제방을 높이고 콘크리트 보를 만들자 냇물은 급속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보에 막혀 흐름이 끊긴 냇물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면서 썩어들어 갔고, 물고기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윗마을에 소를 기르는 축사가 들어서면서 냇물은 완전히 옛 모습을 잃고 말았다. 이제 물고기가 사라지고, 분뇨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냇가를 아무도 찾지 않는다. 그렇게 하천이 죽고, 물고기가 죽고, 그들과 더불어 살았던 마을 사람도 떠났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14조원을 쏟아부어 강바닥을 긁어내고, 제방을 높이고, 콘크리트 보를 쌓는다고 한다. 홍수를 예방하고, 부족한 용수를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하겠단다. 대운하 논란은 그만두고라도 그 과정에서 뭇 생명의 삶터는 파괴되고, 강물은 썩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지금 정부가 하려는 건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강 죽이기다. 온갖 생명이 살아있음에 기뻐 아우성치는 오월이다. 이 오월에 이 정부는 한반도의 생명줄인 4대강마저 난도질하려 한다. 강물이 죽으면 그 속에 살고 있는 뭇 생명이 죽고, 결국에는 인간의 삶도 황폐해진다. 물과 물고기와 인간이 원래 한 몸이란 걸 모르는 것일까. 위정자의 어리석음과 헛된 욕망이 4대강을 죽이려 하고 있다.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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