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18 21:51
수정 : 2009.06.1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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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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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경기가 안 좋다. 그래도 잘나가는 곳이 있다. 도로나 교량을 건설하는 토목업체들이다. 특히 지방에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을 계기로 알토란 같은 관급공사로 실속을 챙기는 건설업체들이 많다. 이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주력사업을 주택에서 토목으로 바꾸느라 바쁘다. 집 짓기보다는 땅 파고 길 내는 토목공사의 전성시대다.
가장 큰 사업은 단연 ‘4대강 살리기’다. 22조2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안에 이뤄지니 이 이상 좋은 호재가 없다. 공사도 어렵지 않다. 강물을 가두는 보 16개를 빼면 일도 아니다. 강바닥을 파서 수심을 깊게 하고 둑을 높이 쌓아 수량이 많이 흐르도록 하는 게 대부분이다. 또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자전거길을 내면 그만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공사만 따면 대박이다.
그렇지만 4대강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천별로 차이가 크다. 본예산 16조9000억원 가운데 9조8000억원(57.7%)이 낙동강에 들어갈 돈이다. 한강 2조400억원, 금강 2조5000억원, 영산강 2조6000억원이니 나머지는 합쳐봤자 7조1000억원이다. 직접 연계 사업비(5조3000억원)를 합한 총예산 22조2000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낙동강 예산은 1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말이 4대강 살리기지 알고 보면 낙동강 살리기에 한강, 금강, 영산강 사업을 끼워넣은 꼴이다.
낙동강 유역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앞으로 2~3년 사이에 13조원의 돈이 뿌려진다. 울산을 빼고 경남북·부산·대구를 합친 인구가 1160여만명이니 1인당 110여만원, 3인 가족 기준으로 330만원가량이 떨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얼마가 될지 모르는 간접 연계 사업이 추가된다. 그뿐인가. 모든 토목공사가 그렇듯이 사업 기간이 길어지고 설계가 바뀌면서 사업비는 늘어나게 돼 있다. 실제로 낙동강 유역은 사업비가 15조원으로 늘어나면 1인당 130만원, 20조원이면 170만원의 돈벼락을 맞게 된다. 애초 14조원 안팎이던 본사업 예산이 불과 몇 달 만에 16조9000억원으로 3조원 가까이 늘지 않았던가.
국토해양부는 4대강 가운데 낙동강에서 가장 많은 수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낙동강이 정비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주요 태풍이 낙동강을 지나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피해다. 4대강을 정비한다 해도 낙동강의 태풍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경기가 어려운데 토목공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정도 경기부양 효과는 있다. 하지만 정부 돈은 공짜가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4대강 사업에 1인당 44만원, 낙동강에만 1인당 26만원씩 갖다 바치는 꼴이다. 세금이 아니라면 국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빚이다. 나중에 우리 자녀들이 갚는다고 약속하고 돈을 빌려서 낙동강 바닥에 쏟아붓는 것과 같다.
풀리는 돈이 지역 주민들한테 얼마나 갈지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대부분은 건설업체 손에 들어가게 돼 있다. 하청과 재하청을 거치면서 공사대금의 30~40%는 미리 건설사들 몫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건설업체들로서는 강에서 모래가 아니라 황금을 퍼올리는 셈이다.
다음달부터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보상금 2조8000억원이 풀린다. 낙동강만 1조4000여억원이다. 한편에선 실업자들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편에선 4대강 살리기로 포장된 돈잔치가 시작될 참이다. 4대강 살리기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차라리 ‘낙동강에 세금 퍼주기’라고 고치는 게 낫지 않을까?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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