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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25 22:49 수정 : 2009.06.25 22:49

정석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가 그제 새벽 기습철거됐다. 국민행동본부 등 극우단체가 정권을 대신해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하고, 행정기관은 말끔히 뒤처리를 하고, 경찰은 이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엄호한 것이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가 대단히 위태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났는데도 시민분향소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를 두고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 설치물일 수도 있다. 그것과, 극우단체가 직접 나서서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공권력이 이를 방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이나 이념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없애 버리겠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음을 뜻한다.

이번 분향소 철거를 주도한 국민행동본부와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일부 회원들의 폭력은 일반 시위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과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이들은 비교적 잘 조직되고 일사불란한 동원체계를 가지고 있다.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철거 때도 새벽에 순식간에 들이닥쳐 5분도 안 돼 분향소를 철거한 뒤 일제히 사라졌다. 최근 <문화방송> 앞에서 벌인 시위 등에서도 똑같은 군인 복장으로 참여해 한목소리를 냈다. 몇몇 시위에서는 가스통이나 가스총을 들이대며 상대방을 협박하기도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다. 촛불시위 등에서 우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시민들과는 다르다.

이들의 폭력이 더욱 위험한 것은 조직의 강고함이나 폭력수단의 과격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정치·사상적 이념 등을 문제 삼는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동원되는 ‘용역깡패’들의 폭력과는 다르다.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겁박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

물론 보수단체건 진보단체건 정치적·이념적 지향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의 의견을 왜곡하거나 부당하게 비난하는 언론사나 집단에 강력한 수단을 사용해 항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더구나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완전히 제거하려 해선 더더욱 안 된다. 아무리 정치적 신념이 다르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체를 인정하는 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적 폭력을 국가 권력이 사실상 용인하고 지원한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의 ‘민주개혁 정권’에서도 이런 극우단체들의 폭력 행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권력의 비호를 받거나 국가 폭력과 결탁하지는 않았다. 이런 사적 폭력을 국가가 용인하기 시작하면 사상이나 이념이 서로 다른 시민들끼리 극렬하게 충돌함으로써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공공연하게 사적 폭력이 자행되는 것은 독재정권 말기에나 있었던 일이다. 4·19 혁명 직전의 자유당 말기가 대표적이다.

시민분향소가 철거된 대한문 앞 거리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권의 비호를 받는 사적 폭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면 위태롭기 그지없다. 이 정권은 자신들이 처리하기 껄끄러운 일을 대신 해주었다고 고소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국가 폭력도 문제지만 국가 권력과 결탁한 사적 폭력은 정권의 운명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달콤한 독약’이다. 빨리 끊기 바란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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