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20 22:06
수정 : 2009.07.2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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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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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노동부 장관과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다. 이 장관이 서울법대 61학번이고, 문 부의장은 3년 밑인 64학번이다. “당시 서울대는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으로 쑥대밭이 된 상태였는데 그때 리더로 등장한 게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이영희 선배였고 다른 사람은 이협 선배(전 민주당 의원)였다.” 실제로 이 장관은 1965년에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펼치다가 제적을 당했고, 70년대 초에는 한국노총 교선부 차장, 전국자동차노조 쟁의부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에도 참여했다.
이 장관은 최근 신문사 논설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전에는 친노동이었는데 지금은 친기업으로 바뀐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달라진 게 없다. 큰 시각에서 봐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교 때 한국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봤고 삼성을 부도덕하게 여긴 적도 있지만, 지금 한국 자본주의가 어떻게 됐는지를 보라. 경제성장이 일자리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기존 노동철학은 <열린 시대의 시민정신>(94년),<산업사회와 노동문제>(92년) 등의 책에 비교적 잘 나와 있다. 92년에 쓴 ‘최근 노동운동의 동향과 노사관계의 과제’라는 글을 보면, ‘근로자의 단결권은 공무원·교사들에게도 허용돼야 한다, 올바른 노동법 질서의 정립을 위해서는 법원과 노동위원회·행정부의 법 적용이 공정하고 일관돼야 한다, 노사자치주의가 확립되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간섭이 자제돼야 한다’는 등 전체적으로 온건합리주의적 성향이었다.
그런데 그는 막상 노동장관이 되고 나서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법 적용의 일관성, 정부 간섭 자제 등의 철학은 실종됐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동계와의 대화에도 소극적이다. 지난달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차 스위스 제네바에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갔으나 대화는커녕 차 한잔도 변변히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에 보지 못하던 논리도 등장했다. 이 장관은 한국의 노동자를 세 종류로 나눈다. 이른바 ‘강남 근로자’(대기업 정규직), ‘강북 근로자’(중소기업 정규직), ‘변두리 근로자’(비정규직)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약화시켜야 경제도 살고 노동자도 산다는 게 논리의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노동유연성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도 기본적으로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장관이 언제부터 그런 소신을 갖게 됐는지, 또 그 생각이 타당한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철학을 현실 정책으로 옮길 능력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노동계에서 지적하는 이 장관의 실책은 대략 이렇다. 첫째, 행정부의 주임무는 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집행하는 것임을 망각했다. 둘째, 최소한 법이 개정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개정안 통과를 너무 낙관하고 준비를 안 했다. 셋째, 노동장관으로서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이 대통령의 뜻을 무작정 따르는 데만 급급했다. ‘100만 해고대란설’ 등 이 장관이 내놓은 논리의 허구는 논외로 치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 노동부만 우스운 부처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미 손을 놓았고 노동부 안에서도 점차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분위기다. 이 장관 혼자만 애가 닳아 있다. 이 장관의 변신이 다음번 개각 때 보상을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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