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3 21:07
수정 : 2009.08.0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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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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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법, 질서, 원칙 등의 단어는 권력의 전유물처럼 됐다. 권력은 이런 거룩한 단어들의 수호자 행세를 한다. 반대로 무법, 무질서, 무원칙 등은 야당이나 반대편 세력들을 비난할 때 쓰는 전가의 보도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말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자신들이 세계의 흐름에 정통하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충실히 따른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반대편 세력을 세계의 변화에 둔감한 우물 안 개구리쯤으로 몰아친다. 과연 그럴까?
김정기 전 방송위원장은 재임 시절 한 신문에 “국제뉴스 전문채널은 <한국방송>과 같은 공영방송이 맡는 게 좋겠다”는 칼럼을 썼다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그는 “방송위원장 신분을 잠시 잊고 교수의 시각에서 경솔하게 글을 쓴 게 잘못이었다”고 회고하며 “하지만 지금 방송통신위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약과”라고 혀를 내둘렀다. 굳이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일탈성 발언은 이제 별다른 뉴스거리도 못 되는 일상사가 돼버렸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기관이지만 업무상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합의제 행정기구’다. 그것이 법이고 원칙이다. 하지만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미디어법의 시행령을 마련하는 후속 조처는 당연하다” “종편 채널은 세 개가 적당하다”는 따위의 최 위원장 말이 내부 합의를 거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방통위는 어느 ‘독임제 기구’보다도 더 강력한 최 위원장 독임 체제다. 그는 언젠가 문화방송의 ‘정명’(자기 위치에 따른 이름이 있으며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뜻)을 거론한 바 있다. 하지만 진정 정명이 무엇인가를 되새겨야 할 사람은 바로 최 위원장 자신이다.
국가인권위는 또 어떤가. 인권위가 ‘등급 강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은 바로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않은 탓이다. 그것도 권력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반했다.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 이른바 ‘파리 원칙’을 정부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신임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스스로 인권의 문외한임을 ‘자백’했으니, 정부가 파리 원칙은 물론 국내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위원장은 인권 분야에서 공인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자)를 어긴 사실도 확실히 증명됐다. 아시아인권위원회의 등급 강등 요청은 한국 정부의 위법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준엄한 기소장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요즘 ‘공안 문교’의 옛 명성을 되찾아 교사들을 상대로 힘자랑하기 바쁘다. 사교육 근절 방안 등을 놓고 줄곧 티격태격해온 권력 핵심부와 교과부가 최근 거의 유일하게 의기투합한 것도 바로 시국선언자 중징계 결정이다. ‘시국선언은 표현의 자유에 속하므로 징계가 어렵다’는 교과부 내부의 법 해석은 일단 제쳐놓자. 교사들에 대한 징계 권한이 시·도교육감에게 있는데도 교과부가 나선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제20조) 위반이다.
법대로 하지 않았다가 큰코다친 사람도 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행정부의 고유 업무가 입법인 줄 잘못 알고 ‘100만 해고대란설’을 앞세워 비정규직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법석을 떨다가 요즘 머쓱해진 상태다. 뒤늦게라도 형세 불리를 깨닫고 법 준수로 돌아섰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도 권력은 너무나 엄숙하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법을 지키지 않으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협박도 후렴처럼 달고 산다. 정말로 희극 아닌가? 정부에 간곡히 호소한다. 제발 법과 원칙대로 하자!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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