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0 20:16
수정 : 2009.08.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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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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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폭염이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그때뿐, 돌아서면 다시 땀이 흐른다. 옛사람 흉내 내어 바람 잘 통하는 마루에서 한시나 읽으면 나을까 했더니, 웬일인지 덥다는 아우성만 눈에 들어온다. ‘관복을 졸라매니 미칠 것 같아 고함이 절로 나건만/ 서류는 어찌 이리 급하게 이어지나’(두보 <초가을 더위에 서류는 쌓이는데>(早秋苦熱堆案相仍)에서)라고 비명을 지르던 옛시인은, 급기야 ‘더위가 지독해 옷에 땀 흐르니/ 기운이 떨어져서 깨어나지 못하겠다’(두보 <열삼수>(熱三首)에서)며 쓰러진다. 이백의 <여름날 산속에서>(夏日山中)의 ‘懶搖白羽扇(나요백우선) 裸體靑林中(나체청림중)’도 ‘흰 부채 천천히 부치며/ 녹음 짙은 숲 속에서 벗고 있노라’라는 여유 대신, ‘부채 부치기도 귀찮고/ 웃통 벗고 숲 속에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라는 짜증으로 읽힌다. 몸이 힘든데 마음인들 어디 한가롭겠는가.
하긴 큰 사람인 다산 정약용도 그랬다. 다산이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방법>(消暑八事)으로 선비의 여름나기를 읊은 것은 오랜 유배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지 7년째 되던 63살의 여름이다. 학문을 인정받고 주변도 여유로울 때의 시다. 나무 그늘에서 바둑 두고, 연꽃 구경에 매미 소리 듣고, 달 밝은 밤 물가에서 발 씻으며 더위를 즐기는 그런 여유는 한 인격이 고난을 통해 숙성했을 때나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강진 유배 4년째이던 43살의 젊은 다산은 불이었다. <여름날 술 앞에서>(夏日對酒)라는 긴 시에서 그는 당시 서민들의 참담한 생활상에 ‘한밤중에 책상을 치고 일어나/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그 울화가 오늘이라고 크게 다르랴.
‘무엇인가 거둬야 한다면/ 부자들을 상대로 해야 옳지/ 어찌하여 피나게 긁어가는 일을/ 유독 힘 약한 무리에게만 하는가…’ 200여년 뒤에도 법인세·종부세·상속세 따위 부자에게 해당하는 세금은 낮추고 서민이 물어야 하는 세금은 되레 높이려는 관(官)이 있다. ‘경상(정승·판서)도 그들이 다 하고/ 악목(공경·제후)도 그들이 하며/ 후설(승지) 맡은 자도 그자들이고/ 이목(어사대부)도 그렇고/ 온갖 낮은 벼슬까지 몽땅 다 해먹는다…’ 지금도 특정 지역, 특정 세력이 핵심 요직을 독점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것 말고도 200일 넘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용산참사에서, 형과 아우가 서로 싸우도록 만든 쌍용차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얼마나 비참하고, 하늘 향해 울부짖을 일’이 많은가.
이 더위를 더욱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권력이다. 곧 내놓겠다던 ‘근원적 처방’은 몇 달째 지지부진이다. ‘국민통합형’이라던 정부와 청와대 개편은, 어느새 대통령의 정책을 잘 집행할 ‘실무형’ 또는 지역 연대를 위한 ‘정략형’으로 변질한 듯하다. 권력 안에서조차 지탄을 받던 이들까지 그대로 둘 것 같다고 한다. 획기적인 대북 제안이나 정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이 나올 것이라던 대통령의 8·15 메시지도 ‘별것 없다’는 쪽으로 기운 듯하다. ‘깊이 생각하면 속만 탈’ 일들이 이어진다.
더위 씻기에 묘책이 있을 리 없다. ‘지루하게 긴 여름날 불 같은 더위/ 땀으로 축축하게 등골이 다 젖을 때’에는 ‘시원한 바람 분 뒤의 소나기’(정약용 <이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不亦快哉行)에서)가 제격이다. 무엇이 ‘소나기’냐고 묻는다면, 다산은 막힌 마음을 뚫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푸른 시내 굽어진 곳, 돌무더기로 둑이 막혀/ 가득히 고인 물이 넘칠 듯 굽이돈다/ 긴 삽 들고 일어나 쌓인 모래 뚫어주니/ 솟구쳐 터지는 물, 우레 같은 기세로다.’ 이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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