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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2 21:32 수정 : 2009.10.22 21:32

김종구 논설위원

2007년 대선이 끝난 뒤 인수위 시절, 국정홍보처 직원이 했다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한때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공무원들에게 그 시절은 가혹한 수난의 시대였다. 새로 권력을 잡은 ‘점령군’은 정권 인수 단계부터 공무원들을 모질게 닦달했다. ‘네가 지은 죄를 이실직고하렷다’라는 호통 앞에 공무원들은 황망히 머리를 조아렸다. 비 맞은 장닭처럼 초라해진 공무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연민의 정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감정의 낭비였다. 고위 공무원들의 뛰어난 생존 능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변신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철저했다. 역시 권력의 힘은 위대하다.

공무원 사회는 항변한다.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조직을 떠나지 않으려면 따르는 길밖에 없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변명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너무 많이 벌어진다. 최근 서울시가 풀뿌리 시민단체인 ‘동자동 사랑방’에 대해 단체의 설립 목적 중 ‘인권 활동’을 빼지 않으면 비영리단체 등록을 해주지 않겠다고 심술을 부린 것은 딱히 위에서 원했기 때문일까. 경찰이 야당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까지 ‘불법 폭력시위 단체’로 지목한 것은 과연 강압과 타율의 결과인가. 이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과거의 예를 보면, 새로운 집권세력과 공무원들의 관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 진화한다. 첫째, 공무원 사회가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몸을 바짝 움츠리는 단계다. 둘째, 권력이 서서히 공무원 사회에 의지하면서 관료와 비관료 출신 간에 힘겨루기가 빚어지는 시기다. 셋째, 결국 공무원 사회에 주도권을 송두리째 넘겨주는 단계다.

이런 공식을 지금의 상황에 그대로 갖다 붙이는 데는 물론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과거 정권 때와는 달리 양쪽의 코드가 본질적으로 잘 들어맞는다. 여기에다 공직 사회는 그동안 ‘과잉’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바쳐 충성을 증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직사회 변화를 강력히 주문하곤 했으나 요즘 그런 말이 쑥 들어간 것도 분위기 변화를 방증한다.

최근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활극’을 관료 대 비관료 출신 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는 징조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노사 문제를 경제수석실이 주도하려 한 게 사태의 직접적 발단이라는 점에서 다소 확대해석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청와대가 나름대로 ‘과거의 물’이 잘 빠진 부처와 그렇지 않은 부처를 나누고, 아직 물이 덜 빠진 부처로 교육부를 꼽는다는 말도 있다. 앞으로 외국어고 처리 등 교육 현안을 두고 어떤 힘겨루기 양상이 전개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권력지도의 변화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주변에서는 ‘바람직한 공직 사회’라는 화두가 사라져버렸다. 정권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무원 조직의 조건은 어떤 것인지, 이를 위해 정치권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권력은 여전히 내편 네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아직도 소탕되지 않은 ‘잔당’이 있는지를 찾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뀌면 또 거기에 맞춰서 살면 될 뿐’이라는 분위기다. 그나마 다른 목소리를 내온 공무원노조에 대해 권력은 아예 고사 작전에 들어갔다. 정권을 향한 공직 사회의 눈곱만큼의 저항도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가 섬뜩하다. 과연 우리 공무원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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