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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6 22:10 수정 : 2009.10.26 22:10

정남기 논설위원

독립 직후 미국의 수도는 두 곳이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가 번갈아 가며 그 구실을 했다. 하지만 오래갈 수는 없었다. 정식 수도를 정하는 과정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결론은 제3의 장소 워싱턴이었다. 포토맥강 북쪽의 작은 마을이었던 워싱턴은 1791년 수도 지정 이후 200여년이 흐르면서 인구 60만명의 대도시가 됐다. 위성도시까지 합하면 530만명이 사는 거대도시다.

하지만 새 수도가 들어섰다고 뉴욕이 위축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위성도시를 포함해 인구 1900만명의 세계 최대 도시로 발전했다. 브라질도 비슷하다. 내륙 한복판에 세워진 브라질리아가 인구 255만명의 대도시로 발전했지만 이전 수도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위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리우데자네이루 거대도시권의 인구는 1400만명을 넘어선다.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하다. 행정수도를 옮겨도 수도권 과밀화나 경제력 집중이 해소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행정수도의 고용창출 능력이 기존의 경제·문화 중심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새 수도가 들어선 지역은 발전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수도 이전의 효과라기보다는 이후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수도 이전은 결국 정치적 판단의 문제인 셈이다.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명분은 국가 균형발전이지만 지금 세종시 규모로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목표대로 50만명 규모 도시로 성장해도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수도권의 국제경쟁력 강화 논리도 마찬가지다. 행정부처들이 서울에 몰려 있다고 해서 국제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처가 어디로 가든 인구 2000만명이 밀집한 수도권의 위상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 행정부처의 이전 규모가 너무 작다. 9부2처2청과 16개 국책 연구기관 등 49개 단위 행정기관을 옮기지만 인원은 1만2000명에 그친다. 애초 구상대로 한 가족을 2.4명으로 잡아도 2만9000여명이다. 여기에 대학 이전에 따른 유입 인구 1만3000여명과 지역 이주민을 합쳐도 4만5000여명, 서비스산업 유발 인구를 고려해도 총인구는 9만~10만명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기업 이전을 전제로 한 2, 3단계 계획이 있지만 실현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 2030년까지 인구 50만명이란 구상은 다분히 희망 섞인 전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는 세종시가 자족 기능을 갖추기 쉽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보완이 필요하다. 성패는 추가로 어떤 시설을 유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알아서 들어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는 위험하다.

정운찬 총리가 취임하면서 불붙은 세종시 논란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원안 고수 발언으로 주춤한 분위기다. 하지만 논란은 다시 불거질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논란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일반 국민들은 원안과 수정안은 물론 박 전 대표의 원안+α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세종시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번듯한 중부권의 중심도시가 될 수도 있고, 행정부처만 들어선 황량한 도시가 될 수도 있다. 해법을 찾으려면 비현실적인 명분 싸움이나 무책임한 정치 공세는 그만둬야 한다. 원안 수정을 바라는 쪽부터 먼저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자세다. 지금과 같은 외곽 때리기 방식은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세종시의 미래는 정치 공세나 명분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실질적인 후속 대책을 마련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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