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09 22:29
수정 : 2009.11.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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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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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의 일부)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강화하던 1938년에 쓰인 이 시는, 나무 이야기를 할 때조차 현실을 회피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독일로 치면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들을, 한국으로 치면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을 거쳐온 21세기는 암흑의 시대와 거리가 멀다고 여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르게 느끼는 이들도 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미국 의사 폴 파머 등 한 무리의 의사와 학자들은 2006년 건강과 폭력 문제를 토론하기에 앞서 브레히트의 이 시를 읽었다고 한다.
그들이 아프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지금이 어느 때 못지않게 끔찍한 폭력의 시대인 탓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02년까지 전세계에서 적어도 160건의 전쟁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숨진 사람만 24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전쟁으로 다치고 병든 사람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폭력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파머 등이 지난달 내놓은 책 <폭력의 시대 전세계의 건강>(Global Health in Times of Violence)은 폭력에 대한 ‘정치적 무감각증’에 도전한다. 폭력은 그 무엇보다 위험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물론 상당수의 사람은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특권이다. 이렇게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느껴야 할 가장 큰 불평등은 어쩌면 폭력 자체보다는 “누가 여전히 우리의 관심 대상이고 누구는 더 이상 아닌지를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는 행위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고 이 책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디디에 파생은 지적한다.(이 내용은 인터넷에 공개된 책의 초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파생이 요구하는 윤리의식을 지니지 않더라도, 한국인조차 전쟁의 폭력에 얽혀들고 있음을 인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군대를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지방재건팀 보호를 위해 파견되는 군인들은 ‘한국 민간인’을 위협하는 ‘아프간 전사’뿐 아니라 어쩌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도 총부리를 겨누게 될지 모른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다는 아니다.
전쟁에 찌든 땅에 희망을 심기 위한 재건 사업도 상황에 따라서는 분쟁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 현재 아프간 상황이 딱 그렇다. 미국의 침공으로 실각한 탈레반은 다시 힘을 모아 아프간 정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의식해 파견되는 한국인들이 아프간 사람 모두의 환영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부질없다. 공격 대상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한국의 개인들이 당장 아프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순 없더라도, 정부의 파병마저 방관해선 안 된다. <폭력의 시대…> 저자들은 “우리는 적어도 폭력을 유발하고 유지하는 세력들을 폭로하려 애씀으로써 우리 개인과 집단의 시선이 이 세력을 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병 반대 목소리들이 결국 파병을 막지 못하더라도 아프간 민중에게 고통을 가하는 세력들을 인식할 기회는 만들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폭력 세력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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