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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12 19:16 수정 : 2009.11.12 19:16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4대강 사업은 토론의 대상인 ‘정책’의 범주를 사실상 벗어나 있다. 어떤 비판이나 대안 제시도 받아들이지 않는 성역이 돼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할 국토 개조의 대역사(大役事)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이해하려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과 관련한 그의 발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이 도산의 강산개조론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거론한 것은 올 1월9일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국정설명회’ 자리였다. 그는 “90여년 전인 1919년 도산 안창호 선생도 우리의 강산개조론을 강조하실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4대강 사업이 강산개조론과 일맥상통함을 강조했다. 그 뒤 그의 강산개조론 인용은 계속됐고, 점차 구체화했다. 3월24일 국무회의에서는 강산개조론을 역설한 도산의 강연 내용이 담긴 수첩을 꺼내 장관들에게 직접 그 내용을 읽어주기까지 했다. 지난 11월2일 예산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강산개조론을 거론했다. 지난 9일 ‘제20회 도산의 밤’ 행사에 보낸 축사를 보면, 그의 의중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선생의 강산개조론은 시대를 넘은 탁월한 혜안”이었다고 치켜세우고 “도산의 말씀 그대로, 오늘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우리 강을 살리고 강물을 풍만하게 하는 것이며, 국토 개조의 대역사”라고 거듭 강조했다.

도산의 강산개조론과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는 데는 안창호 선생이 만든 민족운동 단체인 흥사단의 문성근 기획국장의 한마디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는 “4대강 개발과 도산의 강산개조론은 서로 정반대의 접근 방식”이라며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위인의 사상을 왜곡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계속해서 도산의 강산개조론과 4대강 사업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단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이 강산개조론과 같은 맥락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별 차이는 없다. 자신이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을,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안창호 선생이 주창했던 강산개조론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처럼 왜곡해 홍보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도산 사이에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징검다리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 아래 국토개발 사업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는 산림녹화와 다목적댐 건설 등 치산치수 사업으로 구체화됐다. 목표 지향적 리더십을 가진 박 대통령은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를 달성하도록 독려했다. 이 대통령은 도산의 강산개조론과 박 대통령의 목표 지향적 리더십을 아전인수식으로 차용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임으로써, 도산~박정희~이명박으로 이어지는 국토 개조의 대역사를 자신이 완성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졌음 직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4대강 사업은 ‘정책’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돼 버렸다. 그 폐해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대로다. 민주적 가치와 절차를 무시하고 온갖 위법·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역사를 행하는 양 막무가내로 자기 길을 고집한다. 이성적인 토론은 사실상 무의미해져 버렸다. 이를 저지하거나 최소한 속도라도 늦추게 하려면 ‘근본주의적 대응’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근본주의적 대응이란 야당 국회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내던져 정국을 중단시키거나 수많은 국민이 직접 희생을 무릅쓰며 극단적인 투쟁에 나서는 것 등이다. 그로 말미암을 정치·사회적 비용은 너무 크다. 그러기 전에 4대강 사업을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책의 영역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가.

정석구 선임논설위원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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