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4 21:45
수정 : 2009.12.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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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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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은 돈을 줬다고 하고 한쪽은 안 받았다고 한다.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약속했다고 하자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맞받아친다. 게다가 갑자기 제3자가 등장했다. 돈 받았다는 사람 말고 정작 힘써준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짜맞추기 수사라는 주장이 겹쳐지면서 사건은 실타래처럼 얽혀간다.
참여정부 시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인사청탁을 둘러싼 검찰과 한명숙 전 총리의 공방이다.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다. 지켜보는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알고보면 간단한 사건이다. 곽 전 사장에 대한 권력 실세들의 조직적인 밀어주기가 있었느냐, 그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가 건너갔느냐, 이 두가지가 초점이다.
돈을 건넸다는 2006년 12월20일 총리공관에서의 오찬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석탄공사 사장후보 선임을 눈앞에 두고 공모에 응한 곽 전 사장과 추천권자인 정세균 민주당 대표(당시 산업자원부 장관)가 만났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다. 이를 알고도 자리를 마련한 한 전 총리의 처신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뿐인가. 정세균·곽영욱·강동석(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전주 출신 선후배라는 지역의 끈으로 묶여 있다.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5만달러 전달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계좌추적 결과도 없고, 제3자의 정황증거도 없다. 오로지 곽 전 사장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짜맞추기 수사라고 주장할 만한 대목이다.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이 곽 전 사장을 적극적으로 밀었다는 정황은 분명하다. 특히 정세균 대표는 “(곽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 후보로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장관으로서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장관이 직접 챙긴다는 것은 그를 낙점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게다가 산자부 과장이 후보자 집까지 찾아갔다. 아주 특별한 대우다.
정 대표가 2007년 1월초 산자부 장관직을 물러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석탄공사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3명의 후보를 선정하자 후임 김영주 장관은 곽 전 사장을 1순위로 올려 청와대에 추천했다. 사장 낙점이 안 되자 두달 뒤에는 그를 남동발전 사장에 임명했다. 그때도 비슷하다. 회사가 먼저 나서서 원서를 내라고 연락했다. 이 과정에서 추천권을 행사한 김 전 장관은 직전까지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이었다.
곽 전 사장이 남다른 능력과 자질을 갖췄기 때문일까? 누가 봐도 그건 아니다. 미리 사람을 정해놓고 자리를 꿰맞추려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시종일관 뒤를 봐주는 권력의 배경이 있었다는 얘기다.
검찰 수사가 충분한 증거자료를 갖고 진행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른 법정공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재판과 상관없이 정 대표와 한 전 총리는 자신들의 처신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 ‘야당 죽이기 공작’이란 말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곽 전 사장은 대한통운 법정관리인으로 있으면서 83억원의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빼돌려 사용했다. 그런 사람을 왜 싸고돌았는지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일개 국회의원이 아니라 제1야당의 대표다. 법정공방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시선을 먼저 살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지방 수령은 친구나 친척들을 함부로 오지 못하게 하고 편지도 봉하지 말고 공개해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애초부터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정 대표가 정말 합당한 처신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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