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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11 20:48 수정 : 2010.02.17 13:54

김종구 논설위원

“부처 이전이 이뤄질 때면 공무원을 안 할 테니까 ‘나는 모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얼마 전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이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모임에 참석해 노무현 정권 시절 세종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처신을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솔직히 말해 요즘 공무원들의 발언 중 그토록 감명깊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좁게는 한국 공직사회의 현주소, 넓게는 우리 사회가 처한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현실을 웅변한다.

권 실장 발언의 가장 큰 덕목은 고위공직자들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오로지 ‘국리민복’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공’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사’를 생각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솔직하게 ‘나라의 장래보다 이기심이 우선이었다’고 털어놓은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권 실장은 참여정부 시절 정책기획비서관 등을 지내면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세종시 관련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한다. 세종시 문제를 다루는 주무비서관은 아니었지만 이를 통괄하는 선임비서관이 바로 그였다. 회의를 하면서도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뒤의 일이니…’ 하며 딴생각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엄밀히 따져보면 그런 이기심은 권 실장 개인한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 공무원의 사적 이기심이 끼어드는 경우는 비일비재할 터이다. 그러면 권 실장이 요즘 갑자기 세종시 원안 반대에 열을 올리는 것은 과거 자신의 이기심에 대한 회개와 반성의 결과인가. 그래서 오직 국가의 앞날에 대한 충정에 불타고 있어선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참여정부 때도 먼 뒷날에 관심이 없었듯이 지금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이해관계’가 아닐까. 이기심은 형태만 달리할 뿐 계속 진화하는 법이다. 권 실장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잇따라 튀는 발언을 하는 것도 따져보면 그것이 최고권력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때마침 개각설도 솔솔 피어오르는 시점이다.

굳이 권 실장 한 사람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지금 공무원 사회가 소리 높여 합창하는 세종시 수정안 찬가의 이면에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기심이라는 항목이 녹아들어 있다. 훗날의 결과야 어찌됐든 지금 중요한 것은 수정안 밀어붙이기 대열에 동참해 공로를 인정받거나 최소한 낙오라도 하지 않는 일이다. 권 실장과 같은 변절의 달인들을 두고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틀린 표현이다. 오히려 영혼의 조악성과 저열성이 문제일 뿐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은 통상 정권교체의 횟수와 비례해 발전한다. 우리도 벌써 두 차례나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경험했으니 조금은 진전이 있을 법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어차피 공무원 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 한계를 고려해도 공무원들이 ‘오버’하는 모습이 너무 자주 눈에 띈다. ‘훗날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나’ 하는 조마조마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 역시 ‘내가 공무원을 안 할 때’라는 권 실장의 ‘명언’에서 부분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 고위공무원은 이렇게 잘라말했다. “자신이 현직에 남아 있는 동안에는 지금과 같은 성격의 정권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에 행동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야당으로서야 입맛이 씁쓸하겠지만 그것도 권 실장의 발언이 던져주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야당이 한번 깊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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